Swaziland - 해당되는 글 76건

2011년 08월 2일 부터, 2011년 11월 26일까지 
아프리카 스와질란드 카풍아 라는 곳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

의대를 졸업했다. 그리고 그 6년 동안 노래를 부르던 아프리카를 가기로 했다.
사실 두번째다. 예과때 한번 다녀오고 이번이 두번째다. 달라지는것이 있을까?
오히려 그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을까? 기대감 반 두려움 반 그렇게 아프리카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또 실었다. 
 


카풍아에서의 첫사진. 그곳이 도착한지 이미 한달이 지났을 때다.

그때가 되어서야 몸의 긴장이 풀리고 겨우 카메라를 다시 꺼낼 수 있게되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아이. 하지만 내 기억속에는 카풍아에서 처음으로 찍은 사람이다. 





 


사는 집에 같이 사는 개. 결국 이친구가 그 4달동안 나의 가장 많은 모델이 되어주었다.
종종 사진이 나온다. 멍청하지 않고 똑똑하다. 





 


흔한출근길1.
집 맞은편 아이들이 무언가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종종, 아니 항상 저아이들은 나에게 사탕을 요구했다. 





 


흔한출근길2. 
누군가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아기 엄마는 아니다. 누나다. 태양에 더 타버릴까봐
온몸을 가리고 그렇게 걸어간다 .





 


흔한출근길3.
트럭을 타고 건너마을로 공사하러 가는 사람들. 
그리고 동네 청년하나가 내옆을 지나갔다. 
비포장도로. 나에게는 익숙한 출근길이다. 





 


흔한출근길4.
아직 8월 말. 그곳은 한겨울이다. 나에게는 조금 시린정도지만
그사람들에게는 이불을 감싸고 다녀야할 날씨다. 
더 추워지면 사람들이 감기가 많아진다.





 


흔한출근길5. 
한 소녀가 빵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간다. 
저렇게 식빵하나를 사면 가족이 며칠을 먹는다.





 


흔한출근길6.
마을의 가장 큰 삼거리
하지만 주의깊게 봐야하는것은 소다.
출근 하다보면 항상 저렇게 소를 본다. 저 정도의 작은 소는 아직 무섭지않다.
정말 소가 많으면 10마리 정도이고 내 주위를 둘러 싼다. 카메라를 꺼낼 여유따윈 없다.





 


방문진료를 갔더니 문이 닫혀있었다. 이럴경우 다시 돌아와야 한다.





 


또다른길. 한번은 카메라를 매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어쩌면 흔한 관경
산과 마을이 보이고, 엄청나게 많은 빨래들이 줄지어 걸려 있다. 





 


산책을 하다가 만난 아이들. 사진기를 들이대면 저런식으로 곱게 모인다. 
다시 돌아간다면 이사진을 나눠주고 싶다. 그때까지 살아있기를 빌 뿐이다.





 


봉사하던 곳의 유치원 앞뜰이다. 가장 많이 내가 보았던 관경이다.
주말이면 평상에 앉아 이곳을 바라보며 책을 읽기도 했다.
한국에 온지 2달이 채 안되었지만 답답한 도시에 저곳이 벌써 그립기도 하다. 





 


리드댄스1.
왕이 왕비를 간택하기 위해 하는 댄스. 국가가 파산직전이라는데 결국 했다. 
출산을 경험하지 않은 모든 처녀(이나라 기준은 출산의 유무)들이 왕앞에서 춤을 춘다. 
예전에는 정말 가장 춤을잘추는 여성을 간택했지만 이제는 정치적상황에 따라 
미리 간택되어 있다고 한다.





 


리드댄스2.
주변 왕권국가(?!)들에서 사절단을 보이기도 한다.
저 깃발을 들고가는 사람들은 짐바브웨 출신들 





 


리드댄스3.
저사람들은 잠비아 사람들이다.
현지인들(스와지)과는 다르게 노출을 많이 하지 않는다. 





 


리드댄스4.
저앞에 케냐 사람들이보이고, 줄루부족들도 보인다. 
확실히 줄루는 춤을 잘춘다. 





 


리드댄스5.
가난한 마을에서 온사람들은 발육도 없고, 옷도 제대로 못입고
머리모양도 엉망이다. 말그대로 빈부차이가 느껴진다. 





 


리드댄스6.
부자마을은 때깔부터 다르다. 사람도 많고, 옷도 화려하고
잘먹어서 발육도 다르고, 머리도 깔끔하다. 춤도 잘춘다.





 


리드댄스7.
때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이 나와서 행진을 하기도 한다.





 


리드댄스8.
아마 저중에 왕이 있다., 빨간색 깃털을 머리 뒤에 한사람이다.
(나 이거 끌려가는거 아니겠지...)





 


리드댄스9.
사실 이곳 사람들에게는 리드댄스는 하나의 축제이기도하고 의식이기도 하다.
어린나이에 꽃단장을 하고 나오기도 한다.





 


리드댄스10.
수 많은 수천, 수만의 사람앞에서 
한 아이가 춤을 춘다. 긴장되었던 행사가
저아이 한명으로 분위기가 좋아졌다.





 


리드댄스11.
남자든 여자든 머리뒤에 빨간 깃털을 꼽으면 왕족이라는 아이다.
이 화면에 저 두명은 왕족이라는 이야기다. 





 


리드댄스12.
각 마을 각부족마다 모든 처녀들이 나오기 때문에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근데 스와지는 지금 국가부도 직전이다. 





 


출근하는 아저씨. 더운날씨에도 양복을 곱게 차려입었다.
아마 저날 난 더워서 쪼리를 신고 출근했던거 같다.





 


비가오고 안개가 많은 날인데도 빨래를 널어놓는다.
빨래를 말린다 의 개념이 아니라 걸어두고 보관시킨다 의 개념에 가까운듯하다. 
저옆에 보이는 초록통이 빗물통인데 저 빗물통이 바닥나면 사용할 물이 없다
그래. 아직 이곳은 상하수도가 없는 지역이다. 





 


안개낀날의 대문.
해발 1100m의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안개가 자주낀다. 습하고 춥다. 아프리카라고 무조건 더운것은 아니다.





 


나는 비를 맞고 갈만한 안개비인데도 현지인들은 꼭 우산을 쓰고 다닌다.
그것도 저런 원색으로. 





 


나의 가장 사랑하는 모델1 





 


옆집에 같이 사는 아이(들)
같은 방은 아니지만 같은 울타리안의 다른집에 산다.
둘다 고아이고, 둘다 HIV/AIDS 환자이다. 





 


내가 살았던 집(방)
날씨가 좋아 신발을 말리는 중에 찍었다. 





 


해가 일찍 진다. 7시면 이미 해가진다. 
그럴때는 방에 불을 켜놓는다.
물론 바람이 쎄거나 비가 많이오면 전기는 끊긴다.





 


나의 사랑하는 모델1 + 모델2. 
출근하려는데 나에게 빵조가리를 달라고 문앞에 앉아있다.
살짝 찍어주고 빵조가리르 던져줬다.





 


마을의 가장 큰 삼거리 
마을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기가 들어오는 슈퍼(?!)가 있고, 철문점도 있다.





 


말은 부처리 라고 되어있는데 한번도 도축하는것을 본적없다
저 부처리앞의 풀을 소가 뜯고 있을때가 있는데
정말 아이러니 했다.





 


방문온 환자들. 사진을 찍겠다고하면 웃는다.
고맙다. 항상 건강하기를 빈다.





 


또다른 환자와 모. 
거부감이 없이 모델이 되어준다. 잘 지내고 있을까?





 


진료소에서 밖을 바라보면 이렇게 보인다. 이 사진이 찍힌날은
날씨가 좋은날이다. 





 


수진교무님. 약정리를 한답시고 약방에 들어갔다가 몰래 찍었다.
항상 건강하시기를 빈다. 요즘 내 뒤에 의사가 없어서 많이 걱정이라고 한다.





 


약국. 많이 부족하다면 부족하다. (물론 왼쪽에 또다른 서랍장, 그리고 옆 냉암소에 약이 더있긴있다)
하지만 이 화면안에 들어오는 약으로 이 지역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





 


물약들.
원래 소아를 위해서 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기침약을 좋아해서 다큰 성인도 물약을 달라고한다.
적당히 조절해서 줘야한다.





 


이동진료 박스. 저 종이박스 하나와. 프라스틱 상자 한개
저 두개를 들고 차마 진료소 까지 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진료 하러 떠난다. 





 


이곳 사람들은 타는것을 참 싫어한다 
저렇게 양산을 항상 쓰고 다닌다.





 


이동진료 가는길. 안드레아스 를 보기위해 가는길
길이 험해 차를 내려두고 필요한 약만 가방에 넣고 길을 걸어간다.





 


이동진료중에 본 친구들.
사진을 찍겠다니 잔뜩 멋을 부린다. 
3년뒤 그곳으로 다시 갈때 이사진을 다 주었으면 좋겠다
죽지말고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방문진료길.
이곳은 또 다른곳 언덕 아래쪽에 사람이 살고 있어 걸어가야한다. 
생각보다 길이 험하다.





 


도심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은 흔한 카풍아의 사진이다.
돌이 있고 사람들이 듬성듬성 산다.
원시시대처럼 보인다고 해도 할말은 없다. 근데 정말 그렇다.





 


보통 대문은 철제가 아니라 저렇게 만들어 놓는다.
언덕아래쪽 집인데 문이 닫혀있다.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다
결국 허탕친거다.





 


영양지원사업을 하는 아이다. 
사진을 찍겠다고 하면 별 어색함없다. 아직 이곳 사람들은 원조에 익숙하지않고
사람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얼굴이 반쯤 가려있다. 





 


카풍아에서의 행복중 하나는 일을 마치고 밥을 먹고 퇴근하는 길이면
해지는 노을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많은 옷이 필요하지 않다. 옷걸이에 걸릴옷은 5벌이면 충분하다.
사실 저것도 많다.





 


밤마다 많은 술을 마셨다. 
그래. 술을 마셨다. 





 


마을의 중심이라는 그 삼거리의 상시장터이다
저 양철 가판대에서 이곳의 상권이 생겨난다.





 


아이들의 발
아이들이 신발을 신지않는 이유가 있다. 
신발을 신고 축구를 하면 신발이 헤지기 때문에, 망가져서 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신발을 벗고 맨발로 축구를 한다.





 


이런식으로 맨발로 축구를 한다.
때로는 신발을 사주자.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들의 자립을 위해서는 무조건 주는것은 아니다. 라고 생각하며 생각을 접기도 한다.





 


옆집아이.
저 뒤의 집에 사는아이. 아직 사진찍히는것에 익숙하지 않다.
긴장했다. 찍사가 부족해서인가?





 


나무와 돌로 지은 이동네 집 
물론 저렇게 만 만들어놓으면 우기뒤에 집이 다 무너진다.





 


보통 이정도 급의 소가 항상 널려 있다.
한두마리까지는 괜찮은데 수가 많아지면 겁난다.





 


뭐랄까 이동네 아이들의 포즈는 항상 저 자세.
결국 내가 다른 포즈와 구도를 만들어 내야한다.
아 귀찮은데..





 


이곳에서 방의 단위는 저 짚으로 만든 집하나이고 
저것이 여러개가 모여 군락이 되어 집의 개념이 된다.





 


집을 짓는 방법1.
나무로 벽을 세우고, 위에 짚단을 올린다.





 


집을 짓는 방법2.
그리고 나무기둥의 가로로 나무를 붙이고
그 빈칸을 돌로 채운다.





 


집을 짓는 방법3.
클로즈업 사진 저런식으로 중간이 돌이 비어있다.





 


집을 짓는 방법4.
그리고 나면 흙과 진흙을 섞어 돌 사이를 메꿔준다.
그러면 1년은 버틴다. 우기때 흙이 나 씻겨 내려가기 때문이다.
시멘트를 섞어야 3-5년은 간다. 저 아주머니는 나에게 일자리를 달라고 했다.
시멘트를 사야하는데 돈이 없으니까. 일자리를 달라고 했다(돈이 아니라 일자리를!!!)
이것은 엄청난 발전이다. 직접적인 돈/시멘트 라는 원조가 아니라 그것을 구하기위한
방법을 달라고 한것은 엄청난 발전이고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안개비가 많이오고, 이런 길을 자주 걷는다
가끔 비가 심하게 오면 위의 전봇대 12라인중 하나가 끊어져있다
(전날밤 전기가 끊겼던 원인이랄까...)





 


비가와도 사람은 일을 해야한다 
머리에 이고 가방을 들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같이 일하는 현지인.
항상 고마운 사람들. 많은 가르침을 준 사람들이다.
잘 지내고 있겠지?





 


안개가 심하다. 이날따라 심하다 정말





 


평상시 가던길인데도 안개가 심하면 이곳이 내가 가던길인지 의심이 든다





 


오래된 신발.
누군가의 신발이 오래되어서 사라졌다
이 신발의 주인은 이제 맨발이다. 젠장.





 


평화롭기만 한사진. 이곳 마을은 평화롭고
이들 마음은 평화롭지만 
이들의 삶과 건강은 전쟁터다.





 


그래도 하늘은 안개로, 비로 
이들에게 평화를 선사한다.





 


시내로 가려는 사람들이 아침 버스를 타려고 모인다.
카풍아에서 도시로 가는 버스는 하루에 3번 뿐이다.





 


날씨가 좋은날 내 모델 자리를 꾀차려고 염소들이 들어왔다.
사실. 해뜨자마자(5시) 인간의 울음소리로 울어대서 
일찍 깼다 -_ -;





 


어느정도 지내다보면 사람들이 날 피하지 않는다.
이런 자연스러운(?!) 사진도 찍을 수 있다.





 


하품을 한다. 
기억이 맞다면 생후 2주부터 진료소에 와서 저당시 3달쯔음 되었을 아이다.
이젠 아프지 않기를. 







이번 금요일은 11시까지만 합니다.
감사합니다. 시와봉아.





 


항상 퇴근길에는 노을을 봤다. 
도시에 와서는 노을을 본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두가지중에 하나다.
나를 보면 울거나, 친해지고 안기거나.
이친구는 지금 그 중간에서 심하게 고민하고 있다.





 


안드레아스.
HIV/AIDS환자이고, 합병증으로 결핵이 왔다. 결핵약을 먹다가 귀가 망가졌다.
한쪽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간이 망가졌다. 복수가 차고 다리가 붓는다.
오른손에 들린 닭을 먹으면 많이 좋아졌다고한다.

하지만 내가 카풍아를 떠나고 잠시 미국에 있는동안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곳에서 환자가 나를 떠나는 일은 흔한 일이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방문진료의 아이. 
귀여운 참외배꼽. 다행히도 카시요코는 없고 말라스무스도 없다.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기도한다.





 


방문진료 길에 지역 아이들을 찍으려했다.
한국이나 아프리카 스와지란드나, 저나이대 소녀들은 부끄러움을 많이타나보다.





 


어느날 집에오니 개미 떼의 공격을 받았다. 
망.했.다. 해지기 전에 저거 처리안하면 잠자는 동안에 내 이마 위로 떨어질것이 분명하다.





 


간이로 옷걸이에 천을 달고, 살충제를 묻힌다음 벽에 발라댔다.
보기엔 어설픈 옷걸이 이지만 저 도구가 없었으면 아마 난 개미 떼에 물려 죽었을꺼다





 


환자 할아버지.
눈이 백내장이 아닌가 고민했는데, 노화현상에 따른 증상이라고 한다.
다행이다. 그나저나 왼쪽귀의 피어싱 구멍은 간지난다.





 


마쯔야나 지역의 한 아이. 
머리를 보면 하얗다. 그래. 그 도장빵이다. 
아직 이 지역은 도장빵이 흔하다.





 


어머니 손을 잡고 오는 아이들도 있다.

근데 종종 어머니 인지 할머니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대부분의 사람은 신발이 없다. 맨발이다.





 


떠나기전에 사진을 무리를 해서 찍었다.
이젠 피하지도 않고 나를 쳐다본다.





 


이녀석도 마찬가지.
이젠 나를 두려워하거나 무서워 하지 않는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가칭)모자영양사업 대상자들 
5세이아 집일 경우 식빵을 지원해 줬다. 
문제는 이 사진속의 사람 9명중. 절반이상이 HIV/AIDS환자라는것이다.





 


이렇게 식빵이 지급되면 아이는 식빵을 먹을 수 없더라도 (또는 먹거나)
모유수유를 하는 어머니가 영양섭취가 좋아지면 
자연스레 모유의 질이 좋아진다. 





 


또 집이 잠겨있다. 이날도 방문진료는 허탕이다. 





 


하지만 옆집에서 뛰쳐나와 배를 까고 포즈를 잡는다.
어떻게 보면 이사진 한장이 참 많은것을 의미한다.





 


아버지와 아이들 둘. 
셋다 HIV/AIDS 환자이다. 정말 환자들이 많다.
하지만 해줄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젠장)





 


비가 막 오기 시작할 무렵의 사진. 
흐릿한 기억을 잡아주는 외적 기억장치이다.





 


문을 열면 항상 보이던 풍경. 저집이 넓다던데
다음에는 저집에 혼자가 아니라 꼭 둘이서 살아야지(불끈)





 


비가와도 출퇴근은한다.
우기가 끝나기전에 밭을 갈고 옥수수를 심어야한다. 





 



카풍아에서의 마지막 사진.
문은 닫혀있는것 처럼 보이지만 항상 열려있다. 


- with m6,50cron



사실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보다는 많은 가르침을 받고 왔다.
항상 난 그런식으로 사나보다. 

카풍아에 평화가, 건강이, 있기를 지금 다시한번 기도합니다.   






↓ 아래 쪽 뷰온을 꾸욱 눌러주세요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Tag - AFRICA, kaphunga, Swaziland
      vieuphoria 2011  |  2012.02.27 10:55





  이른 아침마다 닭과 염소가 울어, 그 소리에 잠을 깨는 곳, 여름이면 양철지붕의 열기가 너무 뜨거워 늦 잠을 잘 수 없어 자연스럽게 잠이 깨는 곳. 우기가 되면 한밤인데도 천둥번개 때문에 대 낮 밝은 곳. 남반 구 어디쯤인데, 아프리카의 남쪽으로 있는 나라, 국경의 대부분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둘러 싸여있고 고 지대인 땅, 스와질란드 왕국이다. 의과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의사로 일하고 있는 곳. 내가 의사가 되 자마자 온 곳. 의사로 환자를 처음만난 곳이기에 많은 환자들의 기억이 있는 곳, 내가 이곳에 있거나 떠 나도 아쉬움이 넘쳐나는 곳이다.


  놈필로를 처음 만난 것은 스와질란드에 온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그 주 화요일 오후에 도착했고, 수요 일 아침부터 진료를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첫 주말이었다. 방문 진료를 위해 비포장도로를 따라 한참을 들어갔다. 30분 정도 지나서였을까, 언덕길 아래쪽에 몇 채의 집이 보였다. 가까이 가서보니 진흙과 바 위 그리고 짚으로 만든 집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것을 안 한 아주머니가 큰 집에서 나왔다. 그리고 아주 머니는 우리를 어느 한 집으로 데려갔고 그 집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누군가 누워있었다. 거의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방안에서 누워있던 그 사람은 덮고 있던 낡은 담요를 내렸다. 그리고 힘들어 보 이는 기색이었지만,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그가 20대 후반의 HIV환자 놈필로였다. 그것이 첫 만남이었다.

  놈필로는 대다수의 스와지사람과 마찬가지로 돈을 벌기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갔다. 스와질란드 에는 충분한 일자리가 없고, 있다 해도 그 일당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그러기에 이 나라의 많은 사람 들은 옆 나라의 광산 등으로 일을 하러간다. 놈필로도 그랬다. 돈을 벌기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갔 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그곳에 있으면서 자신이 HIV양성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 고 더 이상 일을 견뎌 낼 수 있는 몸이 아닌 것을 알게 되자 고향 카풍아로 돌아 온 것이다.

  놈필로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의사로서 그에게 무엇을 해줘야하는지 알 수 없어서 당황하고 있었다. 의과대학을 졸업해서 면허가 있다고 하지만, 내가 환자를 만난 곳은 병원이나 의원이 아니었다. 스와질 란드의 산골마을의 작고 초라한 집에서 담요를 두르고 누워있는 환자를 보는 것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 하였기에 긴장한 탓일까? 환자를 대하면서 시작할 수 있는 따뜻한 말이나 건강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보 다는 지금의 증상을 물어보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한 20분 동안 그 방에 앉아있었을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나의 서툰 진료에 시간이 매우 길게 느껴졌다.


  다음 방문 진료일이 되었다.나와비슷한나이에아무것도하지못하고 빈방에누워있기만해야하는 HIV환자를 보러간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나는 한국에서 편하게 공 부를 했지만, 놈필로는 다른 나라에 일을 하러 가야 했고, 그리고 병에 걸렸기 때문일까? 나는 전기와 물이 들어오는 편한 집에서 살고 있지만, 전기와 물이 없는 작은 집에서 살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일까? 나와 대조되는 삶의 모습들이 죄책감을 가지게 했고, 그 감정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 봤기 때문에 좀 나아진 것일까? 처음 만났을 때 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들어보 면 하루 종일 방에만 누워 있는 것 같았다. 날씨가 따뜻할 때, 햇빛을 쐬기 위해 좀 밖에 나가있어 보라고 부탁을 했다. 놈필로는 웃으면서 나가 보겠다고 했다. 설사는 멈추었다고 했지만, 기침은 멎지 않는 다고 했다.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들이 지나갔다. 하지만 이곳에서 스와질란드에서 HIV환자들에게 특별히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다. HIV환자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다른 기관들의 원조를 받아 항바이러스 치료를 정 부병원에서 시행중이고, 상당수의 사람들의 그 치료를 받고 있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을 관리하고, 그들의 상태가 나빠졌을 때 찾아가 다른 병들을 치료해주고, 영양지원을 해주는 일 밖에 없다. 놈필로에게도 이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세 번째 방문 이었다. 그날따라 날씨가 흐려 매우 추웠다. 놈필로의 방문은 언제나처럼 닫혀 있었고, 문 하나와 막혀 있는 창문 하나 있는 방에서 불을 때고 있었다. 방안은 나무 타는 냄새와 연기로 가득 차 있 었다. 이러한 공기를 하루 종일 마셔댔다가는 나라도 병이 날 것 같은 방 안이었다. 창문과 방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놈필로는 춥다고 난리를 쳤다. 하지만 문을 여니 연기는 사라지고, 오히려 불은 더 잘 타 게 되고 방안은 더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계속되는 기침으로 이야기를 지속 할 수 없었다. 혹시나 폐렴이나 결핵인가 하는 걱정으로, 호흡음을 들어보기로 했다. 세 번의 방문 만에 처음으로 놈필로가 담요를 걷어내고 앉았다. 청진을 하기위해 등 쪽으로 갔다. 등은 너무나도 말라 뼈밖에 보이지 않았다. 갈비뼈와 어께 뼈가 그대로 들어나는 등이었다. HIV와 싸우기에는 너무나 말라 있는 몸이었다. 이렇게 말라 있는 몸으로 과연 병과 싸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호흡음을 듣고 나니, 놈필로의 어머니가 욕창을 소독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고보니 지난 세 번의 방문 내내 오른쪽으로만 누워있었던 것을 그때야 깨달았다. 아 그래. 그랬구나. 욕창은 이미 많이 진행이 된 상태라 피와 고름이 섞여있었다. 장갑을 두 겹 끼고, 고름을 닦고, 소독을 하고, 약을 바르고 붕대로 감아주었다. 그 동안 이곳에 있으면서 HIV환자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일까? 나는 스스럼없이 그 일을 했 다. 병원실습 때는 회진을 도는 것 마저 피하려 했었고, 처음 이곳에 와서는 보호 장비를 착용한 뒤 환자 에게 다가가려 했었는데, 이젠 내가 돌봐야 하는 환자이고, 이미 내가 돌봐 온 환자라는 생각이 들어서일 까? HIV환자에 대한 심적 두려움은 더 이상 없었다. 거리감 더 이상, 그것이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앙상하게 뼈만 남아있는 그 등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속적인 영양관리가 필요하 다고 생각했다. 음식을 꾸준히 잘 먹고, 체중이 불고, 몸에 힘이 생기면, 항바이러스 제를 먹으면서 잘 견 딜 것이고 그러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면 더 이상 방안에만 누워있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고 진료소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소식을 전해주었다. 지난 주, 놈필로가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었다. 날짜를 물어보니 방문 진료를 하고 난 다음날이었다. 손을 잡고, 호흡음을 듣고, 욕 창 소독을 해준 그 다음날이었다. 정말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3주 밖에 안 되는 시간이지만 매주 얼굴 을 보아왔고, 이제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갈피가 잡히는 듯 했는데, 그러한 고민에 대한 실행을 시작하기 도 전에 죽은 것이다. 아무리 사람의 죽음이 하늘에 달렸다고 하지만 이러한 갑작스러운 죽음은 나를 꽤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죽음을 막기 위해 내가 해 왔던 일들이, 그리고 할 수 있는 일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나를 무기력 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죽음을 막고 싶어졌다. 이곳 아프리카에는 다른 땅보다 더 많은 죽음이 일 어나고 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 무엇일까? 병에 걸려 있는 환자를 더 많이 돌보는 것 일 까? 그러기 위해 많은 의사를 이곳으로 보내는 것일까? 아니면 첨단 의료시설이 있는 병원을 만드는 것 일까? 하지만 이것이 해결책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차라리 이들이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잘 먹고, 잘 자고, 잘 씻고, 잘 쉰다면 질병에 걸릴 확률자체가 줄어들지 않을까 라는 생각 말이다. 단지 질병에 걸렸을 때만 환자를 돌보는 그러한 의사가 아니라, 이들의 삶 자체를 보 고 좀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좀 더 옳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일을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들이 사는 곳에 살아야 하고 이들의 삶을 돌보는 그러한 사람 말이다. 하지만 그 일들이 한 사람에게 의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도 사람이기에 결국 그곳을 떠 나야 하거나 나이가 되면 죽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곳에서의 일은 다 끝나버리지 않을까? 지 속가능한 일들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내가 카풍아를 떠나더라도, 또는 다른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누군가 가 떠나더라도, 이들이 혼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삶을 만들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변 화에 나도 참여하고 싶다. 훗날 나와 같은 사람이 없더라도 이들이 꾸준히 건강하게 살아 갈 수 있도록 말이다.

  아마 놈필로의 죽음은 단순한 불치병 환자의 죽음으로 기록 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왜 병에 걸렸고, 어 떠한 상태로 그 병과 싸워왔는지를 본다면, 그것은 단지 한 사람의 질병이 아니라 이곳 전체의 상황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더 많은 노력과 사람이 이 땅에 필요하다. 아직도 이 땅 아프리카에 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어떠한 간호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방문 진료 날이다. 그리고 난 곧 이곳을 떠나야 한다.


2011.11.23




신고
      Tag - AFRICA, kaphunga, Swaziland
      Kaphunga 진료소 일기  |  2012.01.04 13:32




카풍아 진료소에서 있었던 일을 정리하는 글들. 
우선 내가 스와지랜드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그리고 무엇을 헀을까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조금은 객관적으로 있었던 곳에서 시간을 가지고 떠나있기에 내가 지금 느끼고 생각 할 수 있는 일들 말이다.

사실 내가 스와지랜드에 가고자 했던이유는. 물론 여러가지가 있지만. 사실은 그것이 제일 우선이었다. 의사면허를 취득한 다음에,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공부들을 위해서 그것들을 미리 경험하고자 했던것이다. 본과 2학년때 시도했다가 성공하지 못했던 WHO에서의 인턴쉽을 하고 싶었고, 그다음에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의사로써 또는 보건학에 대한 일을 하는 사람 으로써 그곳에 있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실 아프리카 여러곳에 지원서를 보냈었다. 수단-이집트-니제르-말라위-스와지랜드 + 아이티 이 6개의 나라들이 내가 가고자 했던 나라들이다. 사실 원래는 우간다에 있는 WHO 에서 인턴쉽을 연장한다음에 그곳에 관련된 사업이있는곳에서 일을 하려고했지만. WHO AFRO의 본부는 우간다가 아니라 콩고에다능이야기를 듣고 좌절. 그리고 독일에서 우간다나 콩고로 바로연결이 되는 프로그램은 없다는것이었다.  위의 있던 곳들에 이미 이력서를 보내보고 인터뷰도 다녀오고 여러일들이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스와지랜드가 되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론 여러 가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었지만, 지금이 아니면은 하기 힘든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스와지 랜드 뿐만이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수단에서의 일이나 니제르에서의 일들도 충분히 특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없고 의사들이 없는 아프리카의 산골마을에서 환자들을 보는 일을 한다는것은 스와지랜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 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외국에 나온것에 있어서는, 한국이 싫어서. 아니 한국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어서 그곳을 떠났다는 것도 무시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을 돕는일, 에 있어서 아무런 사전 경험없이 그 일을 위해 몇년간 무작정 공부한다는 것은 내가 받아드리기에 해볼만한 일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1년을 또는 4개월을 보내게 되었다.

물론 여러가지 일들을 예상했었다. 부쉬뷔쉬 지역에서 의사가 될것이라고 예상했고. 정말 영화나 소설에서만 듣던 그정도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어려운곳에서 현지 환자들을 보면서 지낼것이라 예상했다. 그리고 아프리카 어딘가 작은 마을에 지내는 마을 의사가 될것이라는 예상도 했다. 물론- 한국에는 시골의사 라는 말이 이제 고유명사로 사용 되고 있지만, 아프리카 어딘가 작은 마을의 마을의사라. 아 내가 6년간 대학을 다니면서 원했던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내가 그곳에서 할 수 있었던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진료소에 찾아오는 환자를 보는것. 사실 그 이상 내가 할 수있는 일이 없다.  

오히려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현지인들과 대화를 할 수 없었다. 물론 그사람들 중에서는 영어를 할 수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Swati/Swazi 만 이야기를 했고 우리는 통역을 사용하긴 헀다. 하지만 의료 병력을 얻는것에 있어서 환자와 직접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과 아쉬움이 었다.  정말곳에서 마을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그곳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다른 나의 어려움은 내가 몇몇 외과적인 기본 처치나 다른 병원에서의 잡일을 한 다 음에 할 수있는 기본적인 처치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의사 실기시험이 있는 세대라서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뭐랄까 그래도 내가 할 수없는것들이 더 많았다는것이 나를 안탑깝게 만들었다. 기본적인 꼬멤 도 할 수 없었고 아이도 받을 수 없는 의사였다. 물론 내가 그곳에 오래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었지만 짧은 기간이지만 내가 그러한 일들 을 할 수 있었다면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물론 슈퍼맨 의사가 되느냐 에대한 문제는 아프리카에 있는 의사들이 항상 고민하고, 그 선을 긋기위해서 노력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아. 물론 아프리카에 있는 의사가 아니라 한국에 있는 의사들도 그럴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또다른 아쉬운 일은 그곳에 4개월간 짧게 있었다는 것이다. 그곳에 좀더 오래있었다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서 충분히 많은 장기 계획과 여러가지 일들 을 할 수 있었을텐데, 그렇지 못했다. 잠시 그곳에 있었고, 그리고 그곳을 떠났다. 물론 내가 그곳에 간것이 경험을 위하기라고 했지만 그렇게 짧게 그곳에 있는것은 정말 뭐랄까, 내가 무언가를 얻기위해서만 있는것이지 정말 지속 가능하게 그들에게 필요한것을 공급하지 못하는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가지 일들을 경험했고 여러가지들을 겪었고 느꼈다.  그것들을 제대로 담아 낼 수 없다는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마 내일은 놈필로와  센조 그리고 안드레아스의 이야기를 할까 한다.

Worcester, South Africa, Africa 
2011.11.29  
신고
      Tag - AFRICA, kaphunga, Swaziland
      Kaphunga 진료소 일기  |  2011.11.30 04:59






시간이 지났다. 지난 금요일 마지막 진료를 마치고 밥을 먹으러 가기전에 노트북을 만지는 순간 노트북의 트랙패드와 키보드가 꺼져버렸다. 말 그대로 카풍아에서의 일을 끝내고 난뒤 노트북이 고장난 버린것이다. 그렇게 카풍아에서의 마지막 날이 지나갔다.

마지막 진료는 그렇게 많은 환자를 보지는 않았다. 누군가 아프고 누군가 찾아오고 그 누군가에게 약을 주고 그렇게 나의 마지막 하루는 지나갔다. 과연 내가 느꼇던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과연 내가 그들에게 진정 진짜로 해 줄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나에게 그 시간들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것일까?

지금은 2004년도에 6개월정도 있었던 남아공의 한 도시에 와있다. 7년만에 이곳에 왔는데 너무나 많은것이 바뀌었다, 사람들도 바뀌고, 분위기도 바뀌고, 좋다 나쁘다라고 이야기하기 이전에 다르다 라고 이야기 하는것이 옳은것 같은 그런 분위기 말이다.

과연 7년뒤에 내가 카풍아를 다시간다면 그것 또한 같은 분위기일까? 모르겠다.

2주간의 휴가라고 하지만 이곳 남아공에 있는 동안은 휴가라기보다는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듯 하다.

그렇게 카풍아에서의 마지막 날이 바쁘게 지나갔고, 마지막 환자를 바쁘게 봤으며, 정리할 시간없이 하루를 그냥 지새 버렸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어디일까?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Worcester, South Africa, Africa
26/11/2011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신고
      Tag - AFRICA, kaphunga, Swaziland
      Kaphunga 진료소 일기  |  2011.11.27 05:50






밤새 비가 왔다. 밤에 10시쯤 일찍 자고 새벽 5시쯤 일어났는데, 계속 비가 온다. 아직 이곳을 떠나기전에 해야하는 빨래들이 많아서 정신이없는데;; 이런, 아침에 화장실에 가는길에 집주인 아저씨에게 비가 온다고 투덜거렸더니, Good Rain이라며 좋아한다. 그래 나에게는 빨래를 하지 못해서 나쁜 비 이지만, 이곳에서 살아야 하는 그리고 이제 경작을 해야하고 밭을 갈아야 하는 이 사람들에게는 좋은 비인것이 틀림없다.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안개비다. 안개인것인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아침에 안개가 끼면 낮에는 해가 뜨겠지하며 빨래감을 들고 왔다.

빨래를 돌렸는데, 하루종일 비가 온다. 아 난 안될꺼야, 긴팔의 모든 옷을 돌렸는데, 이거 비가오고 날씨는 춥다. 아 도대체 난 어떻게 해야하는것일까? 정신이 없다.

발바닥 아래가 아퍼서 제대로 걷지 못한다는 한 아이가 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번주 월요일에 왔던 아이다. 혹시나 다른 의심질환이 아닐까 진통제랑 항생제를 주었었는데, 진통제와 항생제 그 어떤것도 듣지 않고 그래도 발바닥 뒤꿈치가 아프다고 말을 한다. 무엇일까? 엄마가 이곳 진료소에 원하는것은 물리 치료이다. 아이가 제대로 걷지 못하니까.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걷기를 바라는 것이다. 근데 이건 그러한 물리치료로 나아질 병으로 보이지않는다. 아마도 발바닥에 어떠한 해부학적이상이나 다른 무언 가가 있는것 같다. 근데 정확한 그것에 대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서 단시 걷기만을 원한다.

엄마에게 설명을 했다. 아이가 이렇게 걷지 못하는것은 발이 아파서인데, 이 발바닥 뒤꿈치가 아픈 이유를 나도 도대체 모르겠다고, 정부병원에가서 다른 영상의학 검사등을 받아보고, 그리고 난 뒤에 그 원인을 찾고 그리고 나서 그 원인을 없애야지 이 아이가 아프지 않고 걸을 수 있다고 말이다. 이제서야 엄마는이해한듯 싶었다.

그러고 몇몇의 환자를 더 보고 그렇게 정신 없이 오전이 지나갔다. 오후시간에는 머리를 했다. 사실 오후 내내 옆건물에 한 방에 앉아서 머리를 하느냐 정신이 없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순간에도 새로운 머리에 적응이 되지 않아 어색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런 어색함과 분주함이 많은 것이 지금의 내 감정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 떠나야 하기에 정신없고 부산한 모습, 정말 지금 내 마음의 상태가 그럴꺼 같다.

하루종일 비가왔다. 빨래는 마르지 않았다. 그리고 내일이 마지막 진료일이다.

Kaphunga, Swaziland, Africa
24/11/2011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신고
      Tag - AFRICA, kaphunga, Swaziland
      Kaphunga 진료소 일기  |  2011.11.24 23:12






어제밤에 잠시 방문을 열었을때, 내 방은 구름 한가운데 있는것 처럼 안개에 둘러 쌓여있었다. 그리고 잠시 10분도 채 지나이 않은채 방문을 다시 여니, 안개는 다 사라져 버렸다. 빠르게 지나가는 구름이 방을 지나갔나 보다. 도원 이라는것이 이런것일까? 오늘 날씨 또한 그랬다.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하늘 높이 있는 카풍아에서는 오늘 태양을 보지 못했다. 하루 종일 구름이 껴있고, 종종 파란색 하늘이 보이긴 했지만, 다시 구름에 쌓였다. 하루종일 구름낀 날이다.

하지만 전기는 들어왔다. 그래서 세탁기를 돌리고, 흰빨래 수건빨래 두번이나 돌렸는데, 뭐랄까. 구름에 쌓여있다보니 습기가 많이 차있고 빨래가 마르지 않는다. 젠장, 게다가 오늘 밤에는 비가 올꺼 같아. 아마 방안에서 말려야 할꺼 같은데 그렇다가 냄새 날까봐 겁난다. 일기인데 왜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적냐고? 오히려 일기니까, 내가 카풍아에 있는 순간에 내가 하는 일을을 적고 싶은것이니까 그렇다. 그러고 언젠가는 이러한 추억들이 그립겠지... 이러한 추억들이 그립더라도 그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이곳으로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제 쯤이었나, 센터에서 일을 하는 툴라니(현지인)에게 뱀굴을 보여주며 뱀굴을 막아달라고 부탁했다. 툴라니 또한 뱀을 무서워한다. 하지만 툴라니는 뱀이 나오면 잡겠다고 했다. 이번엔 생포해 달라고 부탁했다. 뱀을 생포하면 보드카 한병에 잡아 넣은다음. 센터 가장 큰 나무 아래에 묻은 다음, 내가 떠나고, 나중에 나랑 준호랑(전에 있던 기생충학 전공친구) 다시 이곳에 오면 그때 뱀술을 같이 마시자고 했다. 물론 웃으면서 한 이야기 이지만 그냥 헛웃음 잡는 이야기는 아니다. 언젠가, 내가 좀더 큰다음에, 좀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때, 좀더 이들을 배려할수있을때 다시 오고 싶다.

수요일이다. 방문진료를 떠나는날. 차를 타고 안드레아스를 보러 떠났다. 근데 안드레아스 집 근처에 다달았을때 차에서 소리가난다. 브레이크와 브레이크 밴드 사이에서 나는 소리인듯한데, 브레이크를 밟을 때만이 아니라, 평상시 악셀을 밟을 때도 소리가 난다. 불안하다. 차를 세우고 봤다. 하지만 소리가 나지 않는다.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하니 소리가 난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차는 이 차밖에 없는데 걱정이 앞선다. 우스갯 소리로 센터 교무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 가서 로또가 된다면 가장좋은 랜드크루져를 이곳에 기증하겠다고, 교무님이 되 묻는다 "이 샘 한국가서 로또할꺼에요?" 라고, 다시 대답했다 "번개도 맞았는데, 로또도 해봐야죠-ㅎ 잘 되면 랜드크루져 기증할께요" 라고, 로또가 되든 안되든. 안정된 이동수단이 확보되었으면 한다.

안드레아스가 나와있는 장소에 갔다. 이미 여러 사람이 그곳에 와있다. 안드레아스는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계속 배는 불러오고 (아마 복수인듯하다) 그리고 간지럽고 소화가 안된다고한다. 정말 무엇일까? 이미 한달전에 정부 병원에 보내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시키긴 했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내일 결과가 나온다고 한다. 다행이다. 적어도 난 내일 모레까지 이곳에서 진료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떠나기전에 마지막으로 한번더 볼 수있어서, 그리고 그의 병에대해서 알고 도와줄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안드레아스가 건강하기를 빈다.

안드레아스 말고도, 그 식료품점 환자와, 내가 사는 집 근처의 환자, 그리고 저쪽 반대편 언덕에사는 할아버지에게도 들렸다. 할아버지는 혈압이 계속 조절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당도 조절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든 조절 하려고 노력을 했는데, 이런저런 약을 써보고, 도와줬는데, 나아짐이 없다. 근데 오늘이 (당분간) 마지막이라니, 최후통첩을 했다. 할아버지 이제 차(Tea)에 설탕은 넣어드시지 마세요. 할아버지는 얼굴이 구겨진다. 대신 할머니는 방긋 웃는다.

그렇게 방문진료를 마쳤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에게도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냥 이야기하기 싫었다.

지금 센터에서 이 일기를 쓰고 있는데, 코가 매워진다. 이곳 카풍아를 떠난 다는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여러 아프리카 나라에 있었는데, 그리고 여러번의 떠남을 경험했는데, 이번만은 조금 다른거 같다. 아직 떠나야 한다는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단지 수 많은 아쉬움과 미안함만 남아있을 뿐이다.

코 끝이 많이 맵다. 아주 많이

Kaphunga, Swaziland, Africa
23/11/2011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신고
      Tag - AFRICA, kaphunga, Swaziland
      Kaphunga 진료소 일기  |  2011.11.23 22:45






24시간만에 전기가 들어왔다. 어제밤에는, 천둥번개가 심하더니, 결국 전기가 나가 버리던데, 그렇게 전기가 끊겨있는 상태로 지금 이시간 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물론 밤에 잠깐 들어오고 낮에 잠깐 들어왔지만, 유효하지않은 낮은 전압으로 여러번 들어왔다가 나간것이라서 그것을 전기가 온 상태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지난 4달동안 보아왔던 환자를 중심으로, 증상에 관한 감별진단과 그리고 그에 따른 처방약을 표로 만들어서 정리하고 있다. 근데 이곳에서 정리하는 것은 조금 한국에서 배운것과 다르다. 물론 이곳에서 쓸 수 있는 약이 제한적인 것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곳에서의 질병분포가 다르기 때문일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한 예로, 한국에서 3주이상 지속되는 기침일 경우 PND나, 천식 또는 GERD를 의심해 보겠지만, 왜인지 이나라에서 3주이상 지속되는 만성기침은 결핵을 의심해 봐야 할것 같달까? 한국에서 대상포진환자가 오면 아주 심한 스트레스등을 고려하겠지만, 여기는 HIV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일까?

의료라는것이 또는 의학이라는것이, 아니 어려운말 말고 쉬운말로 내가 의학적인 지식의 적용이라는것이 내가 있는 장소와 그리고 시간에 따라 많이 바뀔 수 있다 라는것을 깨닫고있다. 사실 어떠한 환자들을 보았는지 머리속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을뿐이다.

빨래를 세탁기에 넣었지만, 전기가 없어서 24시간 불려야되는것.
그리고 내일 가는 방문진료는 당분간 나에게 마지막 방문진료라는것.
내일 맞추려는 티셔츠를 입으면 아프리카 스타일 티셔츠라는것.
그리고 목요일에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Extension Braids 를 한다는것 이랄까-

시간이빠르게 지나간다. 하지만 그렇게 빠르게 지나가는 시가이지만 이안에서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나를 바라 보는 내가 지냈던 시간을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90 시간정도가 있으면 이땅을 떠나게 되지만, 그 다음곳은 한국이 아니라는것에 살짝, 놀랐다. 아직도 나에게 한국을 돌아가려면 한달 반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것- 물론 지금 한국의 모습을 보면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지만. 익숙한곳, 친구가 있는곳, 그리고 가족이 있는곳 (어라.. 가족은 미국에 있는데..)이 그립다라는 것이다. 세계일주 티켓을 끊어오긴 했지만. 1년 가득 채운 세계일주는 조금은 무리가 있는것 같기도 하다.

춥다. 비는 올듯 말듯하고, 천둥번개는없다. 다행히도 전기는 들어온다. 근데 왜인지 오늘밤은 전기담요를 다시 켜야만 할것 같이 춥다.

Kaphunga, Swaziland, Africa
22/11/2011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신고
      Tag - AFRICA, kaphunga, Swaziland
      Kaphunga 진료소 일기  |  2011.11.23 02:31






요즘 정신이 없다. 이제 이곳을 떠난다는 것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일까? 이곳을 떠나기에 채 120시간도 안남았다. 120시간 뒤면 난 지금쯤 케이프타운에 있다. 사실 주말을 조금 바쁘고 정신없게 보냈다. 목요일밤엔 심한 천둥번개 때문에 숙소에서 편하게 잠을 자지 못했고. 금요일 밤에도 천둥번개가 심했던 지라 차마 집에 올라가지 못하고 이쪽 임시숙소에서 보냈다. 토요일밤에는 수도 음바바네에 가서 이쪽 교당분들이 알고지내는 분들과 같이 저녁을 먹고 한인의 밤 아닌 한인의 밤을 보내고 늦게 카풍아에 온지로 또 임시숙소에서 묵었다. 3일내내 제대로 잠을 못잔듯한 그런 날이었다. 어제밤에도 그렇게 편히 잠을 잔것 같지는 않은 기분이다. 센터에 내려오니 한 교무님이 얼굴을 보며 많이 피곤해 보인다고 하신다. 많이 피곤한것일까?

머리속에 여러가지 생각들과 그리고 해야할 일들이 떠오른다. 지금껏 4달째 꾸준히 써오던 진료소 일기도 이제 정리를 해야하고, 그것과 맞물려, 종합버전에 가까운 진료소 보고서도 하나 써야하고, 또다른 별도로 준비하고 있는 수필을 마지막 퇴고를 해야하는 상황,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또 경험해온 그러한 의료 지식들을 한군데 정리하여 문서로 만들어 놓아 다음에 오는 의사나, 또는 다른 의사가 오기까지 이곳 교무님이 환자를 보기에 어려움이 없도록 해야하는 상황이랄까.

조금 어렸을때는 떠날때가 되면 무조건 떠난 다는 마음에 설레고 신나고 했는데, 이제 지금 되서는 떠나기전에 내가 이곳에 있었다는것을 정리해야할 필요를 느꼈다. 그것을 정리한다는것이 여러가지 의미가 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어떠한 글이나 또는 보고서 형태로 시간이 지나도 다시 볼 수있는 물리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놓는것이지 않나싶다. (아 근데, 글 이라는것이 물리적인 결과물일 수 있는것인가..? )

하지만 내 머리속과 마음속이 이렇게 급하고 여러가지 해야 할 일을 해야한다 해도, 카풍아의 현지상황이 나를 기다려 주는 것은 아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진료소에는 환자들이 있었고,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평균의 환자들과 평균의 HIV환자들을 본 날이었다.사실 내자신이 떠나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기에 그렇게 많은 환자들이 머리속에 남지는 않는다. 차라리 낮시간에 틈틈이 올렸던 내 트윗을 보면서 하루를 복귀하는것이 나을정도-

아침에 정신 없이 토할꺼 같이 힘없고 여유없던때 태어난지 2달이 되지 않은 한아이가 왔다. 개인 적인 생각으로는 가장 아름다운 시기의 아이. 전세계 어디를 가든지, 어떠한 문화권과 어떠한 나라에서든지, 인종을 떠나 아이들은 축복이고 아름다운거 같다. 그래 그러한 아이었다. 그 아이의 웃음을 보고 얼굴을 보고 있을때, 피곤했던 기운이 사라졌다. 그렇게 나의 하루는 그리고 일주일은 웃음이 가득한 축복이어야만하는 한 아주 어린아이의 얼굴을 보며 시작했다.

하지만 하루가 그렇게 행복하고 즐거운것만은 아니었다. HIV 환자가 왔다. 환자의 증상은, 그렇니까 정말 환자가 이곳 클리닉에 온이유로 쓴 것은, (의과대학/병원 에서 말하는 C.C, cheif complaint 는) 배가 고파서, 약을(ARVs)를 먹을 수가 없으니, 음식을 공급해 달라였다. 하- 이거 참 머리가 어지럽다. 갑자기 제프리 삭스가 쓴 빈곤의 종말 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전세계의 가장큰 죽음의 원인을 절대빈곤 이라고 정의 했던 책. 그렇니까, 이곳에서도 너무나 배가 고프기에 약을 먹을 수 없는 HIV환자가 존재하는것이었다. 물론 몇몇 HIV환자를 대상으로 영양지원사업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 무작정 진료소에서와서 음식을 요구하는 경우는 없었다. 난처하다.

그래도 내가 알기로 우리 진료소의 원칙은, 찾아온다고, 무엇을 요구한다고 해서 무조건 공급하지는 않는다. 가 원칙이다. 음식이 필요해서 온 환자가 있지만, 그렇게 진료소에 찾아오는 환자마다 음식을 주게되면, 마을 사람들이 다 이곳에 음식을 요구하러 찾아온다. 물론 정말 절대적인 경우 필요한 경우도 있겠지만, 그러한 일이 일어날 경우, 대부분 자신의 힘으로 밭을 일구고 옥수수를 재배하는 삶에서 멀어져, 누군가의 원조에 의지하게 되는, 존재로 바뀌게 된다. 사실 난 그것을 원조 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곳을 정리하면서도 똑같다. 케이프 타운이나, 시카고에서 입지 않을 옷들을 빨고 정리해서 한곳으로 모아 두었다. 나에게는 우선 필요가 없는 옷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그냥 누군가에게 나누어 줄 수는 없는것이다. 그렇게 했다간. 이마을 사람들이, 또는 어딘가 원조를 받는 NGO가 있는 곳의 사람들은, 누군가 외국인이 왔다가 그곳을 떠나게되면 그들의 것을 주고 간다고 학습을 하게되고 모든 사람에게 기대를 하게 된다. 글쎄, 그것이 옳을까? 모르겠다.

카풍아에 와서 사람들을 돌보고, 국제보건에 있어서 환자들과 바로 부딛치는 의료현장에 있어서 어떠한 것들이 필요한지경험하는 기회였다. 그리고 또다른 면으로 이사람들에게 진정 도움이 되는 원조가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시간이 된듯 하다.

사실 지금 마음은 불편하다. 아까 그 환자에게 무언가 음식을 주었다면 조금 마음은 편했지 않나 싶다.

Kaphunga, Swaziland, Africa
21/11/2011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신고
      Tag - AFRICA, kaphunga, Swaziland
      Kaphunga 진료소 일기  |  2011.11.21 23:27





어제밤이였다. 밥을 먹고 집에 오는데 빗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에 들어오고나서 부터 폭우가 시작되었다. 처음 30분은 비만 내리기 시작 하던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3주전의 악몽이 떠오르는시간. 전기는 이미끊긴지 오래되었고, 다행히도 노트북도 아이폰도 전원이 다 되었다. 모든 전원을 끄고 비가 안 새는 곳에 잘 모셔둔다음. 이제 침대를 옮기기 시작했다. 창문에서 떨어진 저쪽 방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촛불을 키고 창밖을 바라본다. 그렇게 내 저녁은 시작 되었다. 근데 천둥번개는 멈추지 않는다. 매섭게 친다. 사실 이 공포감을 모르겠다. 내가 번개에 맞았기 때문에 생기는 더 심한 공포감인지 아니면 어제 밤따라 심하게 내리친 번개였는지, 주위인들에게 물어보니 어제밤이 꽤 심한 밤이었다고 한다.

그랬다. 오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쉬지 않고 번개가 쳐댔다. 살짝 거짓말 더해서 지금껏 한국에서 살아오면서 봤던 모든 천둥번개를 어제밤 사이에 다 본거 같았다. 쎄고 크고 무섭고 강한 번개들. 무슨 하늘이 클럽싸이키처럼 번쩍 번쩍 대고 있었다.

사실 그것보다 중요한건 어제 오전 환자들이었다. 좀 일찍 진료소에 내려오니 몇 환자들이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그 몇 환자들이 다 HIV환자들이었다. 남자환자의 기침을 보고, 여자환자의 설사를 봤다. 근데 남자환자가 떠나지 않고 진료소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무엇일까? 여자환자가 진료가 끝나고 약을 받아서 나가니 그때가 되서야 남자환자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 둘이 부부였다. 둘은 각자의 진료가 끝나고 나니 서로 조심스럽게 발을 맞추며 진료소를 떠난다. 부부가 HIV환자이고 부부가 약을 받고 부부가 같이다닌다. 이런 모습이 부부의 모습인것인가? 생각이 들었다.

다음주 이시간이면 짐을 싸고 있어야 한다. 카풍아에 온지 벌써 세달하고 반이 지나갔다. 처음 이곳에 있기로 한시간은 네달. 그시간이 다 되어간다.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얻어 가는것일까? 사실 카풍아를 선택한 이유는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울수 있을것 같아서 였다. 현지인과 같이 생활하고, 현지의 환자를 보고 내 한계를 느껴보고 싶었다. 매일매일 조금씩 나의 한계를 느껴 간다. 그와 동시에 어떠한 것이 이들에게 진정한 도움이 되는것인지 고민을 해보는것 같다.

일기가 짧다. 뭐. 사실 정신이 없다. 심리적으로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압박감이 밀려오고 있고. 사실 쉬지 않고 치는 번개 때문에 정신도 없다; ㅎ 그래도 오랜만에 전기가 들어오니 노트북도 충전시키고 업로르도 가능하겠다. 하늘을 보니 또 서쪽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온다. 또 밤에 비와 번개가 치려나보다. 예보대로다. 에휴 ㅎ


Kaphunga, Swaziland, Africa
18/11/2011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신고
      Tag - AFRICA, kaphunga, Swaziland
      Kaphunga 진료소 일기  |  2011.11.18 22:08






수요일이다.

방문진료를 다녀왔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 방문진료 환자의 핵심이 되는 두 환자가 사라졌기에 (한명은 죽었고, 한명은 돈벌러 시내로 나갔다) 방문진료의 폭이 많이 줄어들었다. 새롭게 추가된 안드레아스 등이 있지만 그래도 안드레아스의 상황은 좋고 가까운데 사는것이 랄까. 그리고 방문진료의 대부분의 목적이 영양사업위주로 많이 바뀌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안드레아스를 봤다. 그래도 일주일만이랄까. 영양사업에 들어가서 매주 단백질을 공급한지 어연 3주가 지나간다. 근데 눈에 보기좋게 많이 좋아졌다. 안드레아스 뿐만이아니라 다른 환자들도 그렇다. 사실 방문진료때 보는 사람들의 모두다 HIV환자이긴 하지만, 다들 먹는것부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병원에서 항 바이러스 제제등을 먹고 있다고 해도, 사실 기본적인 영양관리조차 되고있지 않아 고생하는경우가 대부분. 안드레아스는 몇주간 잘 먹기시작하더니 피부색도좋아지고, 혈색도 돌고 증상도 많이 사라졌다. 처음으로, 아무런 증상없이 요즘은 건강히 지내고 있다. 라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까-

사실 우생학적 관점은 아니지만, 이동네 사람들을 보면 흑인이라서 그런지 기본적인 골격이나 근육등이 나와는 매우 다른것을 알 수있다 확실히 신체의 기능에 있어서는 나보다 뛰어난 인종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영양상태가 조금만 좋아지면 병에걸리지 않고 건강한 모습을 볼 수있다. 하지만 조금만 그 영양의 선을 넘어가면 엄청난 비만을 가지기 도한다. 특히 설탕. 이사람들 설탕 참 좋아한다. 커피에도 설탕 홍차에도 설탕 심지어 루이보스티에도 설탕. 설탕은 2테이블 스푼 정도. 티스푼으로는 7-9스푼정도 넣는다. 보통 처음보는 한국인들은 기겁하지만 먹을 것이 없다보니, 단것을 좋아하다보니 한번에 몰아서 먹는 이들의 식생활 패턴을 보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방문진료를 마치고 지금처럼 일기를 쓰고 있으니, (문을 열어놓고) 누군가 들어와서 진료를 봐달라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기침감기정도. 또 문 닫는 것을 깜박했다. 날씨가 덥고 바람을 쐬고 싶어도, 진료시간이후에 문을 열어놓으면 진료시간과 상관없이 들이닥치는 (응급이 아닌 환자들) 때문에 제대로 쉬기가 힘들다. 하- 정말 이럴땐 난감하단 말이지-


Kaphunga, Swaziland, Africa
16/11/2011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신고
      Tag - AFRICA, kaphunga, Swaziland
      Kaphunga 진료소 일기  |  2011.11.16 23:48



's Blog is powered by Daum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