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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phunga 진료소 일기

Kaphunga 진료소 일기 (69)



요즘 정신이 없다. 이제 이곳을 떠난다는 것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일까? 이곳을 떠나기에 채 120시간도 안남았다. 120시간 뒤면 난 지금쯤 케이프타운에 있다. 사실 주말을 조금 바쁘고 정신없게 보냈다. 목요일밤엔 심한 천둥번개 때문에 숙소에서 편하게 잠을 자지 못했고. 금요일 밤에도 천둥번개가 심했던 지라 차마 집에 올라가지 못하고 이쪽 임시숙소에서 보냈다. 토요일밤에는 수도 음바바네에 가서 이쪽 교당분들이 알고지내는 분들과 같이 저녁을 먹고 한인의 밤 아닌 한인의 밤을 보내고 늦게 카풍아에 온지로 또 임시숙소에서 묵었다. 3일내내 제대로 잠을 못잔듯한 그런 날이었다. 어제밤에도 그렇게 편히 잠을 잔것 같지는 않은 기분이다. 센터에 내려오니 한 교무님이 얼굴을 보며 많이 피곤해 보인다고 하신다. 많이 피곤한것일까?

머리속에 여러가지 생각들과 그리고 해야할 일들이 떠오른다. 지금껏 4달째 꾸준히 써오던 진료소 일기도 이제 정리를 해야하고, 그것과 맞물려, 종합버전에 가까운 진료소 보고서도 하나 써야하고, 또다른 별도로 준비하고 있는 수필을 마지막 퇴고를 해야하는 상황,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또 경험해온 그러한 의료 지식들을 한군데 정리하여 문서로 만들어 놓아 다음에 오는 의사나, 또는 다른 의사가 오기까지 이곳 교무님이 환자를 보기에 어려움이 없도록 해야하는 상황이랄까.

조금 어렸을때는 떠날때가 되면 무조건 떠난 다는 마음에 설레고 신나고 했는데, 이제 지금 되서는 떠나기전에 내가 이곳에 있었다는것을 정리해야할 필요를 느꼈다. 그것을 정리한다는것이 여러가지 의미가 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어떠한 글이나 또는 보고서 형태로 시간이 지나도 다시 볼 수있는 물리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놓는것이지 않나싶다. (아 근데, 글 이라는것이 물리적인 결과물일 수 있는것인가..? )

하지만 내 머리속과 마음속이 이렇게 급하고 여러가지 해야 할 일을 해야한다 해도, 카풍아의 현지상황이 나를 기다려 주는 것은 아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진료소에는 환자들이 있었고,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평균의 환자들과 평균의 HIV환자들을 본 날이었다.사실 내자신이 떠나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기에 그렇게 많은 환자들이 머리속에 남지는 않는다. 차라리 낮시간에 틈틈이 올렸던 내 트윗을 보면서 하루를 복귀하는것이 나을정도-

아침에 정신 없이 토할꺼 같이 힘없고 여유없던때 태어난지 2달이 되지 않은 한아이가 왔다. 개인 적인 생각으로는 가장 아름다운 시기의 아이. 전세계 어디를 가든지, 어떠한 문화권과 어떠한 나라에서든지, 인종을 떠나 아이들은 축복이고 아름다운거 같다. 그래 그러한 아이었다. 그 아이의 웃음을 보고 얼굴을 보고 있을때, 피곤했던 기운이 사라졌다. 그렇게 나의 하루는 그리고 일주일은 웃음이 가득한 축복이어야만하는 한 아주 어린아이의 얼굴을 보며 시작했다.

하지만 하루가 그렇게 행복하고 즐거운것만은 아니었다. HIV 환자가 왔다. 환자의 증상은, 그렇니까 정말 환자가 이곳 클리닉에 온이유로 쓴 것은, (의과대학/병원 에서 말하는 C.C, cheif complaint 는) 배가 고파서, 약을(ARVs)를 먹을 수가 없으니, 음식을 공급해 달라였다. 하- 이거 참 머리가 어지럽다. 갑자기 제프리 삭스가 쓴 빈곤의 종말 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전세계의 가장큰 죽음의 원인을 절대빈곤 이라고 정의 했던 책. 그렇니까, 이곳에서도 너무나 배가 고프기에 약을 먹을 수 없는 HIV환자가 존재하는것이었다. 물론 몇몇 HIV환자를 대상으로 영양지원사업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 무작정 진료소에서와서 음식을 요구하는 경우는 없었다. 난처하다.

그래도 내가 알기로 우리 진료소의 원칙은, 찾아온다고, 무엇을 요구한다고 해서 무조건 공급하지는 않는다. 가 원칙이다. 음식이 필요해서 온 환자가 있지만, 그렇게 진료소에 찾아오는 환자마다 음식을 주게되면, 마을 사람들이 다 이곳에 음식을 요구하러 찾아온다. 물론 정말 절대적인 경우 필요한 경우도 있겠지만, 그러한 일이 일어날 경우, 대부분 자신의 힘으로 밭을 일구고 옥수수를 재배하는 삶에서 멀어져, 누군가의 원조에 의지하게 되는, 존재로 바뀌게 된다. 사실 난 그것을 원조 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곳을 정리하면서도 똑같다. 케이프 타운이나, 시카고에서 입지 않을 옷들을 빨고 정리해서 한곳으로 모아 두었다. 나에게는 우선 필요가 없는 옷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그냥 누군가에게 나누어 줄 수는 없는것이다. 그렇게 했다간. 이마을 사람들이, 또는 어딘가 원조를 받는 NGO가 있는 곳의 사람들은, 누군가 외국인이 왔다가 그곳을 떠나게되면 그들의 것을 주고 간다고 학습을 하게되고 모든 사람에게 기대를 하게 된다. 글쎄, 그것이 옳을까? 모르겠다.

카풍아에 와서 사람들을 돌보고, 국제보건에 있어서 환자들과 바로 부딛치는 의료현장에 있어서 어떠한 것들이 필요한지경험하는 기회였다. 그리고 또다른 면으로 이사람들에게 진정 도움이 되는 원조가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시간이 된듯 하다.

사실 지금 마음은 불편하다. 아까 그 환자에게 무언가 음식을 주었다면 조금 마음은 편했지 않나 싶다.

Kaphunga, Swaziland, Africa
21/11/2011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