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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uphoria 2011

카풍아진료소 (사진100장으로 남긴 4달간의 기억)

2011년 08월 2일 부터, 2011년 11월 26일까지 
아프리카 스와질란드 카풍아 라는 곳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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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를 졸업했다. 그리고 그 6년 동안 노래를 부르던 아프리카를 가기로 했다.
사실 두번째다. 예과때 한번 다녀오고 이번이 두번째다. 달라지는것이 있을까?
오히려 그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을까? 기대감 반 두려움 반 그렇게 아프리카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또 실었다. 
 


카풍아에서의 첫사진. 그곳이 도착한지 이미 한달이 지났을 때다.

그때가 되어서야 몸의 긴장이 풀리고 겨우 카메라를 다시 꺼낼 수 있게되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아이. 하지만 내 기억속에는 카풍아에서 처음으로 찍은 사람이다. 





 


사는 집에 같이 사는 개. 결국 이친구가 그 4달동안 나의 가장 많은 모델이 되어주었다.
종종 사진이 나온다. 멍청하지 않고 똑똑하다. 





 


흔한출근길1.
집 맞은편 아이들이 무언가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종종, 아니 항상 저아이들은 나에게 사탕을 요구했다. 





 


흔한출근길2. 
누군가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아기 엄마는 아니다. 누나다. 태양에 더 타버릴까봐
온몸을 가리고 그렇게 걸어간다 .





 


흔한출근길3.
트럭을 타고 건너마을로 공사하러 가는 사람들. 
그리고 동네 청년하나가 내옆을 지나갔다. 
비포장도로. 나에게는 익숙한 출근길이다. 





 


흔한출근길4.
아직 8월 말. 그곳은 한겨울이다. 나에게는 조금 시린정도지만
그사람들에게는 이불을 감싸고 다녀야할 날씨다. 
더 추워지면 사람들이 감기가 많아진다.





 


흔한출근길5. 
한 소녀가 빵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간다. 
저렇게 식빵하나를 사면 가족이 며칠을 먹는다.





 


흔한출근길6.
마을의 가장 큰 삼거리
하지만 주의깊게 봐야하는것은 소다.
출근 하다보면 항상 저렇게 소를 본다. 저 정도의 작은 소는 아직 무섭지않다.
정말 소가 많으면 10마리 정도이고 내 주위를 둘러 싼다. 카메라를 꺼낼 여유따윈 없다.





 


방문진료를 갔더니 문이 닫혀있었다. 이럴경우 다시 돌아와야 한다.





 


또다른길. 한번은 카메라를 매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어쩌면 흔한 관경
산과 마을이 보이고, 엄청나게 많은 빨래들이 줄지어 걸려 있다. 





 


산책을 하다가 만난 아이들. 사진기를 들이대면 저런식으로 곱게 모인다. 
다시 돌아간다면 이사진을 나눠주고 싶다. 그때까지 건강하기를 빌 뿐이다.





 


봉사하던 곳의 유치원 앞뜰이다. 가장 많이 내가 보았던 관경이다.
주말이면 평상에 앉아 이곳을 바라보며 책을 읽기도 했다.
한국에 온지 2달이 채 안되었지만 답답한 도시에 저곳이 벌써 그립기도 하다. 





 


리드댄스1.
왕이 왕비를 간택하기 위해 하는 댄스. 국가가 파산직전이라는데 결국 했다. 
출산을 경험하지 않은 모든 처녀(이나라 기준은 출산의 유무)들이 왕앞에서 춤을 춘다. 
예전에는 정말 가장 춤을잘추는 여성을 간택했지만 이제는 정치적상황에 따라 
미리 간택되어 있다고 한다.





 


리드댄스2.
주변 왕권국가(?!)들에서 사절단을 보이기도 한다.
저 깃발을 들고가는 사람들은 짐바브웨 출신들 





 


리드댄스3.
저사람들은 잠비아 사람들이다.
현지인들(스와지)과는 다르게 노출을 많이 하지 않는다. 





 


리드댄스4.
저앞에 케냐 사람들이보이고, 줄루부족들도 보인다. 
확실히 줄루는 춤을 잘춘다. 





 


리드댄스5.
가난한 마을에서 온사람들은 옷도 제대로 못입고
머리모양도 엉망이다. 말그대로 빈부차이가 느껴진다. 





 


리드댄스6.
부자마을은 때깔부터 다르다. 사람도 많고, 옷도 화려하고
머리도 깔끔하다. 춤도 잘춘다.





 


리드댄스7.
때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이 나와서 행진을 하기도 한다.





 


리드댄스8.
아마 저중에 왕이 있다., 빨간색 깃털을 머리 뒤에 한사람이다.
(나 이거 끌려가는거 아니겠지...)





 


리드댄스9.
사실 이곳 사람들에게는 리드댄스는 하나의 축제이기도하고 의식이기도 하다.
어린나이에 꽃단장을 하고 나오기도 한다.





 


리드댄스10.
수 많은 수천, 수만의 사람앞에서 
한 아이가 춤을 춘다. 긴장되었던 행사가
저아이 한명으로 분위기가 좋아졌다.





 


리드댄스11.
남자든 여자든 머리뒤에 빨간 깃털을 꼽으면 왕족이라는 아이다.
이 화면에 저 두명은 왕족이라는 이야기다. 





 


리드댄스12.
각 마을 각부족마다 모든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이 나오기 때문에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근데 스와지는 지금 국가부도 직전이다. 





 


출근하는 아저씨. 더운날씨에도 양복을 곱게 차려입었다.
아마 저날 난 더워서 쪼리를 신고 출근했던거 같다.





 


비가오고 안개가 많은 날인데도 빨래를 널어놓는다.
빨래를 말린다 의 개념이 아니라 걸어두고 보관시킨다 의 개념에 가까운듯하다. 
저옆에 보이는 초록통이 빗물통인데 저 빗물통이 바닥나면 사용할 물이 없다
그래. 아직 이곳은 상하수도가 없는 지역이다. 





 


안개낀날의 대문.
해발 1100m의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안개가 자주낀다. 습하고 춥다. 아프리카라고 무조건 더운것은 아니다.





 


나는 비를 맞고 갈만한 안개비인데도 현지인들은 꼭 우산을 쓰고 다닌다.
그것도 저런 원색으로. 





 


나의 가장 사랑하는 모델1 





 


옆집에 같이 사는 아이(들)
같은 방은 아니지만 같은 울타리안의 다른집에 산다.
둘다 고아이고, 둘다 HIV 양성 환자이다. 





 


내가 살았던 집(방)
날씨가 좋아 신발을 말리는 중에 찍었다. 





 


해가 일찍 진다. 7시면 이미 해가진다. 
그럴때는 방에 불을 켜놓는다.
물론 바람이 쎄거나 비가 많이오면 전기는 끊긴다.





 


나의 사랑하는 모델1 + 모델2. 
출근하려는데 나에게 빵조가리를 달라고 문앞에 앉아있다.
살짝 찍어주고 빵조가리르 던져줬다.





 


마을의 가장 큰 삼거리 
마을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기가 들어오는 슈퍼(?!)가 있고, 철문점도 있다.





 


말은 부처리 라고 되어있는데 한번도 도축하는것을 본적없다
저 부처리앞의 풀을 소가 뜯고 있을때가 있는데
정말 아이러니 했다.





 


방문온 환자들. 사진을 찍겠다고하면 웃는다.
고맙다. 항상 건강하기를 빈다.





 


또다른 환자와 모. 
거부감이 없이 모델이 되어준다. 잘 지내고 있을까?





 


진료소에서 밖을 바라보면 이렇게 보인다. 이 사진이 찍힌날은
날씨가 좋은날이다. 





 


수진교무님. 약정리를 한답시고 약방에 들어갔다가 몰래 찍었다.
항상 건강하시기를 빈다. 요즘 내 뒤에 의사가 없어서 많이 걱정이라고 한다.





 


약국. 많이 부족하다면 부족하다. (물론 왼쪽에 또다른 서랍장, 그리고 옆 냉암소에 약이 더있긴있다)
하지만 이 화면안에 들어오는 약으로 이 지역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





 


물약들.
원래 소아를 위해서 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기침약을 좋아해서 다큰 성인도 물약을 달라고한다.
적당히 조절해서 줘야한다.





 


이동진료 박스. 저 종이박스 하나와. 프라스틱 상자 한개
저 두개를 들고 차마 진료소 까지 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진료 하러 떠난다. 





 


이곳 사람들은 타는것을 참 싫어한다 
저렇게 양산을 항상 쓰고 다닌다.





 


이동진료 가는길. 안드레아스 를 보기위해 가는길
길이 험해 차를 내려두고 필요한 약만 가방에 넣고 길을 걸어간다.





 


이동진료중에 본 친구들.
사진을 찍겠다니 잔뜩 멋을 부린다. 
3년뒤 그곳으로 다시 갈때 이사진을 다 주었으면 좋겠다






 


방문진료길.
이곳은 또 다른곳 언덕 아래쪽에 사람이 살고 있어 걸어가야한다. 
생각보다 길이 험하다.





 


도심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은 흔한 카풍아의 사진이다.
돌이 있고 사람들이 듬성듬성 산다.
원시시대처럼 보인다고 해도 할말은 없다. 근데 정말 그렇다.





 


보통 대문은 철제가 아니라 저렇게 만들어 놓는다.
언덕아래쪽 집인데 문이 닫혀있다.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다
결국 허탕친거다.





 


영양지원사업을 하는 아이다. 
사진을 찍겠다고 하면 별 어색함없다. 아직 이곳 사람들은 원조에 익숙하지않고
사람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얼굴이 반쯤 가려있다. 





 


카풍아에서의 행복중 하나는 일을 마치고 밥을 먹고 퇴근하는 길이면
해지는 노을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많은 옷이 필요하지 않다. 옷걸이에 걸릴옷은 5벌이면 충분하다.
사실 저것도 많다.





 


밤마다 많은 술을 마셨다. 
그래. 술을 마셨다. 





 


마을의 중심이라는 그 삼거리의 상시장터이다
저 양철 가판대에서 이곳의 상권이 생겨난다.





 


아이들의 발
아이들이 신발을 신지않는 이유가 있다. 
신발을 신고 축구를 하면 신발이 헤지기 때문에, 망가져서 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신발을 벗고 맨발로 축구를 한다.





 


이런식으로 맨발로 축구를 한다.
때로는 신발을 사주자.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들의 자립을 위해서는 무조건 주는것은 아니다. 라고 생각하며 생각을 접기도 한다.





 


옆집아이.
저 뒤의 집에 사는아이. 아직 사진찍히는것에 익숙하지 않다.
긴장했다. 찍사가 부족해서인가?





 


나무와 돌로 지은 이동네 집 
물론 저렇게 만 만들어놓으면 우기뒤에 집이 다 무너진다.





 


보통 이정도 급의 소가 항상 널려 있다.
한두마리까지는 괜찮은데 수가 많아지면 겁난다.





 


뭐랄까 이동네 아이들의 포즈는 항상 저 자세.
결국 내가 다른 포즈와 구도를 만들어 내야한다.






 


이곳에서 방의 단위는 저 짚으로 만든 집하나이고 
저것이 여러개가 모여 군락이 되어 집의 개념이 된다.





 


집을 짓는 방법1.
나무로 벽을 세우고, 위에 짚단을 올린다.





 


집을 짓는 방법2.
그리고 나무기둥의 가로로 나무를 붙이고
그 빈칸을 돌로 채운다.





 


집을 짓는 방법3.
클로즈업 사진 저런식으로 중간이 돌이 비어있다.





 


집을 짓는 방법4.
그리고 나면 흙과 진흙을 섞어 돌 사이를 메꿔준다.
그러면 1년은 버틴다. 우기때 흙이 나 씻겨 내려가기 때문이다.
시멘트를 섞어야 3-5년은 간다. 저 아주머니는 나에게 일자리를 달라고 했다.
시멘트를 사야하는데 돈이 없으니까. 일자리를 달라고 했다(돈이 아니라 일자리를!!!)
직접적인 돈/시멘트 라는 원조가 아니라 그것을 구하기위한 방법을 달라고 한것은 엄청난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안개비가 많이오고, 이런 길을 자주 걷는다
가끔 비가 심하게 오면 위의 전봇대 12라인중 하나가 끊어져있다
(전날밤 전기가 끊겼던 원인이랄까...)





 


비가와도 사람은 일을 해야한다 
머리에 이고 가방을 들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같이 일하는 현지인.
항상 고마운 사람들. 많은 가르침을 준 사람들이다.
잘 지내고 있겠지?





 


안개가 심하다. 이날따라 심하다 정말





 


평상시 가던길인데도 안개가 심하면 이곳이 내가 가던길인지 의심이 든다





 


오래된 신발.
누군가의 신발이 오래되어서 사라졌다
이 신발의 주인은 이제 맨발이다. 젠장.





 


평화롭기만 한사진. 이곳 마을은 평화롭고
이들 마음은 평화롭지만 
이들의 삶과 건강은 전쟁터다.





 


그래도 하늘은 안개로, 비로 
이들에게 평화를 선사한다.





 


시내로 가려는 사람들이 아침 버스를 타려고 모인다.
카풍아에서 도시로 가는 버스는 하루에 3번 뿐이다.





 


날씨가 좋은날 내 모델 자리를 꾀차려고 염소들이 들어왔다.
사실. 해뜨자마자(5시) 인간의 울음소리로 울어대서 
일찍 깼다 -_ -;





 


어느정도 지내다보면 사람들이 날 피하지 않는다.
이런 자연스러운(?!) 사진도 찍을 수 있다.





 


하품을 한다. 
기억이 맞다면 생후 2주부터 진료소에 와서 저당시 3달쯔음 되었을 아이다.
이젠 아프지 않기를. 







이번 금요일은 11시까지만 합니다.
감사합니다. 시와봉아.





 


항상 퇴근길에는 노을을 봤다. 
도시에 와서는 노을을 본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두가지중에 하나다.
나를 보면 울거나, 친해지고 안기거나.
이친구는 지금 그 중간에서 심하게 고민하고 있다.





 


안드레아스.
HIV/AIDS환자이고, 합병증으로 결핵이 왔다. 결핵약을 먹다가 귀가 망가졌다.
한쪽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간이 망가졌다. 복수가 차고 다리가 붓는다.
오른손에 들린 닭을 먹으면 많이 좋아졌다고한다.

하지만 내가 카풍아를 떠나고 잠시 미국에 있는동안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방문진료의 아이. 
귀여운 참외배꼽. 다행히도 카시요코는 없고 말라스무스도 없다.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기도한다.





 


방문진료 길에 지역 아이들을 찍으려했다.
한국이나 아프리카 스와지란드나, 저나이대 소녀들은 부끄러움을 많이타나보다.





 


어느날 집에오니 개미 떼의 공격을 받았다. 
망.했.다. 해지기 전에 저거 처리안하면 잠자는 동안에 내 이마 위로 떨어질것이 분명하다.





 


간이로 옷걸이에 천을 달고, 살충제를 묻힌다음 벽에 발라댔다.
보기엔 어설픈 옷걸이 이지만 저 도구가 없었으면 아마 난 개미 떼에 물려 죽었을꺼다





 


환자 할아버지.
눈이 백내장이 아닌가 고민했는데, 노화현상에 따른 증상이라고 한다.
다행이다. 그나저나 왼쪽귀의 피어싱 구멍은 멋이있다.





 


마쯔야나 지역의 한 아이. 
머리를 보면 하얗다. 그래. 그 도장빵이다. 
아직 이 지역은 도장빵이 흔하다.





 


어머니 손을 잡고 오는 아이들도 있다.

근데 종종 어머니 인지 할머니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대부분의 사람은 신발이 없다. 맨발이다.





 


떠나기전에 사진을 무리를 해서 찍었다.
이젠 피하지도 않고 나를 쳐다본다.





 


이녀석도 마찬가지.
이젠 나를 두려워하거나 무서워 하지 않는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가칭)모자영양사업 대상자들 
5세이아 집일 경우 식빵을 지원해 줬다. 
문제는 이 사진속의 사람 9명중. 절반이상이 HIV 양성 환자라는것이다.





 


이렇게 식빵이 지급되면 아이는 식빵을 먹을 수 없더라도 (또는 먹거나)
모유수유를 하는 어머니가 영양섭취가 좋아지면 
자연스레 모유의 질이 좋아진다. 





 


또 집이 잠겨있다. 이날도 방문진료는 허탕이다. 





 


하지만 옆집에서 뛰쳐나와 배를 까고 포즈를 잡는다.
어떻게 보면 이사진 한장이 참 많은것을 의미한다.





 


아버지와 아이들 둘. 
셋다 HIV 양성 환자이다. 정말 환자들이 많다.
하지만 해줄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비가 막 오기 시작할 무렵의 사진. 
흐릿한 기억을 잡아주는 외적 기억장치이다.





 


문을 열면 항상 보이던 풍경. 저집이 넓다던데
다음에는 저집에 혼자가 아니라 꼭 둘이서 살아야지(불끈)





 


비가와도 출퇴근은한다.
우기가 끝나기전에 밭을 갈고 옥수수를 심어야한다. 





 



카풍아에서의 마지막 사진.
문은 닫혀있는것 처럼 보이지만 항상 열려있다. 


- with m6,50cron



사실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보다는 많은 가르침을 받고 왔다.
항상 난 그런식으로 사나보다. 

카풍아에 평화가, 건강이, 있기를 지금 다시한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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