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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phunga 진료소 일기

Kaphunga 진료소 일기 (53)



며칠째 안개가 심하다. 오늘 하루도 안개가 심하다. 지금 일기를 쓰고 있는 시간은 오후 3시 30분인데, 안개가 어느정도 거치긴 했어도 하루종일 태양을 못보고 있다. 아마 조금만 있으면 또 안개로 마을 전체가 덮이겠지. 사실 이지역이 높다보니 이것이 안개인지 구름인지 헛갈릴때가 있다. 안개로 보이기는 하는데, 언덕에 걸려있는 것을 보면 구름같고, 구름같기는 한데, 무슨 구름이 바로 내 머리위에서 초속 1m/s 이상의 속도로 지나가냐. 변화무쌍한 카풍아다.

이런 날씨에 있다보면 지금 있는 곳은 카풍아이고 같은 공간적인 배경이기는 한데, 시간적 배경이나 정신적배경이 다르지 않나 라는느낌이 들곤 한다. 사실 가시거리 10m내외의 안개에서는 평상시 지내던 곳도 다른곳으로 느껴지는 기분이랄까? 며칠전 만 하더라도 더워서 반팔입고 헉헉거리던 내가 지금은 다시 후드티를 입고 추워서 떨고 있으니 말이다.

안개가 계속된 효과 때문인지, 카풍아가 다른 동네 처럼 느껴졌다. 그런 다른 느낌을 기록하고 싶어서, 흑백필름을 끼고, 카메라를 들고 내려오는 중이었다. 언덕을 내려오는 길에, 어떤 노래 소리가 들린다. 마을한 가운데다, 혹시 장례식이 아닐까 할 정도로 많은 수의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10명의 넘는 남자들이 부르는 노래다. 고음도 있고 저음도 있고, 흑인 남자 고유의 그 울림이 강한 저음과, 또다른 흑인 남자 특유의 고음이 섞여있다. 박자를 맞추며, 발을 구르며 노래를 부른다. 무슨일일까.

길을 한참 내려오고 와서보니, 전기노동자들이 트럭에서 전봇대를 내리면서 부르는 노동가였다. 노동가가 이렇게 아름답다니, 10m도 보이지 않는 안개가 있는 상황에서 저 멀리서 들려오는 흑인들의 합창을, 아침 출근길에 듣는것은 축복이렸다. 그렇게 오늘의 하루가 시작 되었다.

아침에 환자를 봤다. 혈당을 체크하러 온 할머니. 혈당을 체크하기 위해 아침이나 커피를 먹었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아니라고 했다. 그렇게 혈당체크를 하고, 정상 범위인 것을 확인한뒤 돌려보냈다. 환자는 없는데, 계속밖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환자가 있는 줄 알고, 들어오라고 했는데, 환자가 아니라고 했다. 무슨일인가 하고 밖에 나가 보니, 대기실에서 아까 그 할머니가 아침을 먹고 있다.

현지인 음식인 밀리밀 (옥수수 가루를 물에 불려 익힌 것)을 먹고 있는것이다. 저 멀리집에서 오면서 혈당검사를 위해 공복으로 왔고, 혈당 검사를 한뒤에 이제 밥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혈당 검사가 뭐라고, 의사가 말하는 것이 뭐라고, 저멀리서 밥까지 굶고 와서 검사를 받고, 그리고 지금 낮선곳에 앉아서 뒤늦은 밥을 먹고 있는것일까.

괜시리 눈물이 났다. 그리고 고마웠다. 왜 인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없다보니 하루종일 트위터에 살고있다.
파우스트 1부보다 2부가 재미있다고 누가 그랬냐, 2부지금 몇번째 다시 읽고있는데, 난 재미없다.(...)

Kaphunga, Swaziland, Africa
27/10/2011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