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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phunga 진료소 일기

Kaphunga 진료소 일기 (52)



어제밤부터 비가 오는듯하더니 밤 11시경에는 전기가 나갔다. 그리고 새벽 4시쯤에 다시 들어왔다. 뭐 이젠 전기나가는 것이 익숙하다보니 별일은 아니디만, 아침은 안개가 가득찬 하루였다. 물론 하루종일 안개가 넘쳤고, 지금 아직 해가 질 시간은 아닌데 안개로 온땅이 가득차있다. 오늘 하루 난 태양을 못 본듯하다.

비가오고 안개가 있는 날은 환자들이 적다. 음 아니 비와 안개가 있는 날은 대게, 날씨가 추운데, 이동네 사람들은 추우면 안나온다. 전에 비오는데 더운날 이 있었는데 그날은 환자들이 많았었다... 환자가 적음을 예상하고 진료소에 왔는데도 이미 몇명의 환자가 와있다.

첫 환자는 나이가 60이 넘지만 건강해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직립을 선택한 인간이 노화를 겪으면서 생기는 관절통이 주소였다. 이런저런 신체검진을 해보고 진통제를 주고있었다. 그 사이 다른 환자가와서, 접수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 할아버지는 다른환자가 요구하는 혈압검사/혈당검사 이야기를 들었나보다. 약을 받더니, 자기도 혈압검사 혈당검사를 해달라고 한다. 한국의 내과의원에서는 혈당이나 혈압이 루틴이겠지만, 혼자서 접수를 제외한 진료,처방,조제,복약교육 까지 해야하는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환자가 아닌 사람이 혈압이나 혈당을 요구할때는 조금 난감해진다. 게다가 지금처럼 뒤늦게 다른사람이 요구하는 것을 보고 요구할때는 말이다.

하지만 그환자를 보낸뒤 혈압과 혈당 측정을 원했던 환자를 보고나서는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이 환자는 정부병원에서 혈압과 혈당약을 받아서 먹는데, 중요한것은 정부병원에서 혈압과 혈당을 정부병원이아닌, 우리 클리닉에서 측정하고 오랬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의사의 소견은, 같은 측정기기로 측정을 하는것이 정보를 기록하는것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혈압같은 경우는 기기에 따른 또는 측정자에 따른 오차가 어느정도 발생할 수 있으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병원에선, 우리 클리닉쪽으로 환자를 토스하곤 한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정부병원은 우선 많은수의 환자를 보고, 게다가 장비나 의료기기들이 많이 부족하다. 혈당 검사를 하는 스틱조차도 그것이 다 돈이고 수입을 한다고 가정을 한다면, 정부병원은 그것을 다른곳으로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종종 고민에 빠진다. 만성병의 관리에 있어서, 한 병원에서 한 의사가 꾸준히 하는것이 좋지는 않을까 라는것,

이미 의료시스템이잡혀있는 상황에서, 물론 지금 있는 곳이 준-오지 급이기는하지만, 국가의 의료시스템과 공존하는것이 가능한 것인가, 에대한 질문 말이다.

오후에 방문진료를 갔다. 오늘은 날씨가 흐린관계로, 그리고 지난주에 몇몇 환자들이 오늘은 농사일로 바쁘기에 다음주에 와달라고 했기에, 몇몇 가정만 선택적으로 방문했다. 방문의 주 목적은 영양관리. HIV/AIDS환자들을 대상으로 주기적으로 영양지원을 해주는것이다.

마지막에 방문한 집은, 지난주와 마찬가지고 아무도 집에 없었다. 주기로 했던 식품들을 다시 싸들고 올라오는데 저쪽언덕위에서 누군가 내려온다. 그 환자다. 우리가 오는것을 보고 밖에 있다가 지금 내려왔다는 것이다. 환자에게서는 담배냄새가 났다. 그리고 반쯤 취해있었다. 시간은 아직 오후3시밖에 안되었을 시간. 식품을 주고 비타민과 엽산 그리고 다른 면역강화제제들이 남아 있는지 물어 봤다. 2달전쯤에 1달치분만 주었으니까, 이미 없어야 하는상황. 하지만 환자는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말한다. 즉, 약을 먹지 않는 것이다.

혼자사는 남자라서 그런것일까? 약을 제때 챙겨먹어야 겠다는 의지도, 살아남아야 겠다는 의지도 없어보였다. 우리가 식품을 주고간들, 아마 다음주에 영양 지원을 나왔을때 그 식품이 그대로 남아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 오히려 남아있다면 다행이지 않을까? 지금의 행동으로 봐서는 그 식품들을 다시 돈을 주고 팔아 그 돈으로 술과 담배를 사지 않을까 걱정이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 혼자서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에 대해서 여러가지 사회적 장치등을 보조를 해주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은, 종종 의지조차 없고, 하루하루를 겨우겨우 소비적(?!)으로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조금씩 달라지곤 한다.

과연 이 환자에게 매주 영양지원을 해주는것이 옳은것인지 모르겠다.

해는 지지 않고 창밖은 누런 안개가 꼈다. 곳 해가 지고 나면 어두워 지겠지.

Kaphunga, Swaziland, Africa
26/10/2011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