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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phunga 진료소 일기

Kaphunga 진료소 일기 (46)



화가나고 속상하며 무기력한 날이다.

환자가 진료를 보고난뒤 고맙다며 파파야를 주고 단다든지, 날씨의 변화에 따라 환자가 변한다든지, 성병의 치료법을 3제요법에서 콘돔을 추가한 4제 요법으로 바꾸었다는 이런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있지만, 그건 이렇게 몇줄의 단어의 조합으로만 남기면 될듯하다. 내가정말 이곳에 있으면서 느끼는거, 잊어버리기 싫은 감정, 기억, 생각들을 남기고 싶다.

혹여 혼자서 김칫국 2000cc를 마시며, 이 일기들이 책으로 출판 되면 어쩌나 라는 인간이 광속여행을 할법한 환상을 꿈꾸며 때로는 안에서 진정 고민되거나, 또는 내 실수등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내가 이 일기를 쓰는이유는 내자신이 나중에 다시 기억하기 위해서이니까, 남들의 어떠한 손가락질이 있어도, 괜찮을듯 하다. 물론 그렇다라면 블로그에 공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혼자 일기를 쓰고, 혼자 봐야하지만, 음. 그렇네.

오늘은 수요일 이동진료를 가는날이다. 역시나 다를까 지난주에 보았던 발등에 카포시가 있고, 다리에 부종이 있고, 복수가 있는것으로 추정되는 환자를 또 봤다. 확실히 지난번에 이뇨제를 제대로 준것 같지가 않아, 소화기내과때 돌면서 배웠던 알닥톤/라시스의 조합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근데 복수라는것이, 하지부종이라는것이 그렇게 물만 뺀다고 해결되는것이 아님이 떠올랐다. 사실은 정확한 용량관계 및 하루 복용량을 모르겠어서, 미국에 있는 친한 형에게 물어봤는데, 역시나 내과 펠로우의 포스란. 엄청난 질문공세와 더불어 내가 제대로 진단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히려 그렇게 약을 쓰기보다는, 정확한 진단을 하는게 우선인 것일텐데 말이다.

갑자기,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하는 내 자신과, 지난번에 잘못된 이뇨제를 주었던 내 자신, 그리고 복수천자를 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해졌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던것인가? 한국에서의 의과대학에서 무엇을 배웠던것인가? 의사면허라는 것이 있지만 실제적인 능력을 뒷바침 해주지 못하는 종이쪼가리인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M.D.라는 호칭은 있지만 과연 GP라고 내 자신을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전상의 GP의 정의와 우리나라 의대졸업생 의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같은것일까? 과연 우리나라 의대에서는 무엇을 배워왔던것일까, 이런 고민들 말이다. 무기력한 내존재, 무능력한 내 존재가 느껴졌다.

그렇게 내자신을 책망하는 가운데, 또 한가지 매우 속상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카풍아의 한 아이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이야기이다. 그것도 같은 집에 사는 가족에게 말이다. 그아이는 아직 5살도 되지 않은 여자아이.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이야기란 말인가?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이라는 말인가? 화가 났다. 매우 아주 많이, 심하게 말이다. 모든 폭력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성폭행,유아학대,가족간폭력 을 제일 나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동시에 일어나다니, 거세해야할 대상은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만 있고 아프리카에는 없기를 바랬는데, 이 나라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는것인가? 무엇이 잘 못된것인가? 이런 고민들이 떠올랐다.

한국에서도 그런일들이 많이 생긴다. 성폭력에 대해서 내가 대처해야하는 입장은 무엇일까? 폭력이후의 치료와 돌봄일까? 아니면 민원제기등을 통한 법령의 강화로 인한 성폭력의 두려움을 만들어 내는것일까? 아니면 올바른 성과 성행위에대한 인식과 성교육 이 필요한것 아닐까? 아무리 법령이 강화된다 할찌라도, 사람들의 인식속에 성에대한 잘못된 생각이 있다면 그것은 나아짐이 없는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올바른 성에 대한 인식이 아닐까? 그리고 올바른 성행위에 대한 인식이 아닐까?

난자 정자 이야기만 하고, 2차성징이나, 몽정,생리주기 이야기만하는 성교육이아니라, 사회에서 성이란 어떤 개념이고 어떻게 사용해야하며, 또한 성행위에 대한 상호합의가 필요하다. 등의 교육이 필요한것이 아닐까? 모텔촌 등이 난무하는 세상에 성교육시간에는 아직도 순결교육등을 하고 있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성에대한 지식이나 생각은 도색잡지나, 3류 야설 또는 포르노그라피, 또는 최루성소설 등이 아닐까?

지금까지 난 스와지에서 잘 하고 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늘의 삽질등을 통해서 깨달았다. 내가 지금 꾸준히 삽질을 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내 자신만 옳다고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는 엄청난 규모의 광역 삽질을 하고 있는것이 아닐까? 내자신에 대해서 돌아보는 시간이다. 조금 더 냉정하게, 그리고 나를 분리시켜 제 3자의 입장에서 말이다.

Kaphunga, Swaziland, Africa
19/10/2011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