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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phunga 진료소 일기

Kaphunga 진료소 일기 (44)



주말이다. 보통 주말에는 환자를 보지 않는 관계로 그리 쓸 말이 없다. 근데 일기라는 것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는 개념이니까, 특별히 이번주말에는 무언가 머리속에 복잡한것이 많아졌기에, 정리하고 싶은 욕심이 들기도 한다.

그리는 배부르지 않게 반그릇정도 밥을 먹고 진료소에 들어왔다. 일요일이라 환자는 없고, 음악을 들으면서, 트위터나 하겠다는 일상으로 말이다. 근데 아까 1시간전부터 트위터가 되지 않는다. 다른 인터넷도 되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일까? 크레딧을 확인해 봤다. 크레딧이 0란드. 핸드폰에 돈이 없으니까 인터넷 접속이 안되는 것은 당연한일. 일요일이라 슈퍼는 문을 닫았고, 게다가 돈도 없다. 물론 어제 대량 구매한 에어타임은 집에 있다. 네트-로 부터 자유로운 오후라는 이야기다.

사실 답답하고 굉장히 짜증나는 듯할 그런 오후일것 같은 기분이지만, 오히려 네트로 부터 자유롭다는 것이 나를 기쁘게 한다. 사실 대략 두달전 아이폰을 떨어트려 2주간 네트로 부터 단절된 시간이 있었다. 그 어느때보다 행복하고 기분이 좋았던 시간 같다. 시간도 천천히가고, 사실 급한 연락이 있다면 전화로 올것이니까 그렇게 집착하지 않으련다.

실은, 며칠전부터 수필을 쓰고 있었다. 모 문학상에 응모하기 위해서인데, 사실 그러다보니까 보여주기위한 글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자극받을 만한 극적인 요소를 집어넣었고, 불필요한 묘사등으로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했다. 수필이라는 느낌보다는 소설적 형식에 가까웠다 라는것이 전문가(?!)의 평가. 감상문에 가까울 수도 있는 수필이라는 글이 꾸며진 글이 되어버렸다. 사실 다시 그 글을 읽으면 괴물이 되어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나타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괴물. 말이다.

평상시의 일기들도 보여주기 위해, 블로그에 올리고, 트위터,페이스북,닥블,헬쓰로그 연동등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전세계라는 표현이 과장될 수 있겠지만, 아프리카 스와지랜드에서 작성된 일기들이, 아시아의 한국이나, 유럽의 독일이나 영국, 북미의 미국 등에서 읽힌다는 것은 세계적이지 않을까?_) 하지만 이 일기를 쓰는 근본적인 목적은 나를 위한 기록이었다. 몇년뒤에 또는 몇십년뒤에 내자신이 스와지에서의 생활을 돌이켜보고 싶을 때 사용하기 위한 어떠한 외부장치에 남겨놓은 내 기억의 일부이다.

머리속에 있는 생각이라는 것이 또는 관념이라는 것이 글로 남겨져 버리는 순간 정형화 되어버리고 더 이상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버리지 못하지만, 몇년뒤 또는 몇십년뒤 그 생각을 떠올리기위 해서는 글이라는 도구로 박제화 시켜야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몇십년뒤에 다시 내가 이 글을 읽음으로써 박제화 되었던 생각을 다시 내 머리속의 나비로 날려보내고 싶다.

사실 다시 수필을 쓰겠다라는 자신감이 사라졌다. 무언가 의식을 하고 글을 쓰는순간 모든것이 망가져 버리는것을 알고있으니까, 그러한 의식이나 압박 가운데서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글연습을 오랬동안 해왔던것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다. 글을 쓰지 않고, 매순간 순간에 집중하다보면은 어느순간 내가 정말로 남기고 싶은 순간들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이든다. 가슴속에 느끼는 것들을, 머리속에 생각하는것들을 표현하지 않고 곱게 담고담아 모아둔다면 어느순간 그것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가지 않을까 라는 작은 소망, 또는 헛된 망상이랄까- 그러한 고민들이 많아진다.

괴물을 다시 만지러 가봐야겠다. 아무리 괴물이라지만 내가 만들어버린 존재이기에, 다시 돌려 놓고 싶다. 과연 그것이 가능한지 모르겟지만-
오랜만에 오래 뛰려고 한다. 머리속에 생각들이 많아질때는 몸을 혹사하는것이 좋은듯하다. 어떠한 방법으로든-

그나저나, 보통 요즘의 일기가 2000자분량이다, 일기 2개분이 4000자인것이다. 내가 말이 많나? 아니면 미사여구가 많은건가?

Kaphunga, Swaziland, Africa
16/10/2011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