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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phunga 진료소 일기

Kaphunga 진료소 일기 (36)


9월에 일기를 썻던거 같은데, 정신차리고 나니 10월 4일이다. 사실 10월 1,2,3,일 내내 폭우였다. 말 그대로 폭우. 아프리카 식으로 표현한다면우기의 시작이었고, 카풍아 사람들 식으로 표현한다면 봄비였다. 밭을 다 태웠고, 비가 왔으니, 이제 옥수수를 심을 수 있는것이다. 근데 비가 오면 날씨가 따뜻해 질 줄 알았는데, 춥다. 10월인데 춥다. (참고로 여기는 남반구입니다...)

순수한 보리 100%로만 만든 보리밥을 배부르게 먹고 올라왔다. 설거지를 하는데, 장갑을 안끼고 하니 슬슬 주부 습진끼가 온다. 음.. 고무장갑을 끼어야 하나?; 우선 핸드크림을 발라보자- 오랜만에 문에 앉아서 일기를 쓰는데. 바람은 차갑고, 날씨도 선선하다. 한국의 가을 날씨 기분- 이곳이 봄인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같은 집(같은 건물은 아닌데, 같은집)에 사는 꼬마아이 두명이서 앞에서 축구를 하다. 이녀석들 ㅎ 축구관람에는 맥주가 기본- 오랜만에 맥주한병을 열었다- 기분이 좋다

지난 금요일을 마지막으로 했던 화상환자가 또 왔다. 사실 버스를 두번이나 타고 와야하는 먼곳에 사는 환자인데, 화상을 너무 심하게 입었고, 또한 그 환자 집 근처에 제대로된 health care centre가 없는 관계로, 처음 이곳에 오게 된뒤로는 (4개월전쯔음), 센터에서 그 환자의 교통비까지 부담하면서 드레싱을 해줬는데, 이제 화상의 크기도 많이 줄었고, 너무나 오랫동안 센터에서 교통비까지 부담하게 된다면 좋지 않을것으로 판단, 본인이 원한다면 본인이 차비를 드리고 오던지, 아니라면 동네 주변의 health care centre에 가서 드레싱을 받으라고 했다. 그리고 외래 전원(?!)을 하면서 차트에다가 가볍게, 약물복용력, 그리고 드레싱 히스토리 등을 적어서 보내줬다. 그리고 환자는 고맙다며 닭한마리를 선물로 주고 갔다. (여기서 닭한마리는 생닭- 그렇니까. 살아있는 중닭), 참고로 그 중닭은 트위터에서 밝힌데로 주변 이웃에게 micro loan 의 형태로 주었다.

근데 그 환자가 화요일인 오늘 다시온것이다. 설마 자기돈을 부담하면서 까지 이곳에 오기에는 그차비가 만만치 않을텐데.. 어연일인가 물었더니, 동네의 병원에서 어떤 dressing을 했는지 적어 달라고 했다는거다. 기본적으로 화상환자 dressing하면 조금씩차이는있지만도, 기본적인 룰은 있는것이 아닌가, "쿨링-베타딘드레싱-실바딘크림-(파라핀거즈)-무균거즈-분대"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근데 그것조차 모르는곳이라니 덜컹 겁이 났다. 설마 French Dressing인지 Italian Dressing인지가 궁금한것은아니겠지... 주변에 물어보니, 이동네 health care centre는 의사가 없는 곳이 많고, 주로 '처방권을 가지고 있는' 조산사가 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아 물론 조산사라면 궁금할 수 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조산사라는 직업은 나에게 매우 매력적인 직업. 의사라는 면허가 있지만,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병원실습을 돌은 관계로 자연분만을 본 경험이 없고, 애도 받아본 경험이 없다. 기본적인 suture에 대해서는 배웠지만 경험이 없는것이지만, 분만이라는 어떠한 의료행위에 있어서, 그부분에 특화된 직업이 있다는것은 탐나기도 하다. 하지만 계속 임상의의 상태로 아프리카에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또다른 고민.

지난 4일간 비가 매섭게 왔다. 비어갔단 빗물 통도 어느정도 채워졌고, 이래저래 사람들은 빨래하느냐고 난리다. 토요일 밤이었나- 금요일밤이었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비는 매섭게 오고 있고, 그 매서운 비로인해 양철지붕은 심하게 울리고 있어, 노트북에서 들리는 음악소리도 들리지 않는 밤이었다. 때마침 전기도 나간상태. 주위의 집에는 촛불이 없는지 양초불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내방의 양초를끄고, 헤드렌턴을 끄고, 방문을 열고 밖을 보았다. 반경 1km주변에는 아무런 빛이 없는 상태. 칠흙같은 암흑, 난 혹여나 순간에 내가 시력을 잃은 줄 알았다. 그리고 동시에 시각도- 아무런 빛이 없으니까. 어떠한 작은 빛도 없으니까 이러한 어둠이 가능하다 라는것을 깨닫게 되었다. 순간 이것이 현실인지 아니면 꿈인지 헛갈리기도 했다. 오프라인-온라인의 공존상태, 아니 꿈과 현실의 공존상태일까, 오감중 하나를 잃는 다면 그러한 기분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비가 오지 않는다. 어제밤에는 매서운 폭우가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뜨니 새벽 4시 30분. 불면인가 생각했더니, 정신을 놓은 닭들이 울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단 20분만에 주변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더 많은 닭들과 염소가 울어대기 시작했다. 좀더 누워있다가 아침에 방문을 여니, 먼지한점 없는 맑은 하늘에, 태양이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오늘 하루가 시작되었다.

해는 점점 늦게 진다. 그리고 일찍 뜬다.

Kaphunga, Swaziland, Africa
04/10/2011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