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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phunga 진료소 일기

Kaphunga 진료소 일기 (24)



밥을 먹고 숙소로 올라왔다. 올라오는길에 구름들이 아름답게 보였다. 방문을 열고 그 문턱에 앉아서 일기를 쓰는데 천둥소리가 들린다. 곧 비가오려나 보다. 비가 오면 전기가 나가고, 통신이 나간다. 그래도 오늘밤은 잘 무사히 보낼 수 있기를...

오전 첫환자는 어제와 같은 환자였다. 전신 피부 가려움증을 주소로한 환자. 동일한 환자는 아닌데, 3일내내 같은 증상의 환자들이 나타나니까 이거 기분이 묘하다. 알레르기에 의한 피부염이라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러기에는 비슷한 증상으로 (동일한 증상에 가깝겠다) 생각보다 많은 환자들이 나타나고, 게다가 같은 집에 거주하는 사람들 위주로 발생하니 신기하다. 아마 내일도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면 이건 뭔가 있는듯 하다. 그래서 궁금한 마음에 멘슨열대의학에서 피부병파트를 열었다. 역시 피부병은 말로만 봐서 모른다 그림을 봐야겠다 라는 생각이었지만. 그림을 봐도 모르겠다. 피부과는 무슨 암호 해독 같다. 사진이나 글의 설명을 보고 환자의 피부병변을 알아 맞추어야 하는...

비가온다. 스크린에 물방울이 한두방울 씩 떨어진다. 그리고 무지개모양으로 픽셀들이 나타난다.

1993년생의 여자아이가 임신검사를 받기위해 왔다. 다행히도 결과는 네가티브. 소녀(?!)에게 콘돔을 사용하라고 말했지만. 들은척 만척 그냥 떠나고만다. 이곳 사람들은 콘돔에 대해서 공포증이 있는것일까? 지난번에 UTI/STI증상으로 방문한 환자에게도 콘돔을 사용하라고 말했지만. 들은척 만척 떠났다.

폭우가 내린다. 얼른 방안으로 들어왔다. 스크린에는 물방울 투성이다.

비가오면 전기가 끊길가봐 걱정이지만 사실은 다행이다. 날씨가 더워짐에 따라 감기환자는 줄어들지만, 비가 오지 않아 식수가 부족한관계로 오염된 물을 많이 먹어서 인지 설사환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설사 환자들에게 ORS를 준다한들, clean water 가 없는데 ORS를 어디에다가 섞어 먹을까...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있었다면 이미 설사가 없었겠지...

한 환자가 왔다. penis 부근에 물집이 잡혀있다. 성병으로 보인다. 환자에게 물어봤다. 최근 HIV/STI검사를 받아보았냐고, 환자는 말한다. 그런적이 없다고, 그럼 난 다시 말한다 환자에게, 검사를 꼭 받아보라고. 어찌보면 한국에서 그런 질문을 환자에게 한다는것은 환자에게 굉장한 충격이나 모욕감이 될 수 있지만 이곳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드린다. 꼭 약제때 먹었어요? 와 같은 뉘양스의 질문일까나? 나라에 따라 질병의 분포에 따라 환자에게 모욕이 될 수 도 있다는것이 참.

종종 HIV/AIDS환자인데, 다른 성병이 급성으로 동반되는 경우가 있고, 진료를 마치고 약을 받아갈때 콘돔도 같이 가져간다. 아직 나로써는 받아드리기 힘든 상황이다. 콘돔사용을 거부하지만 임신걱정을 하는 소녀, 성병에 걸리지만 콘돔을 거부하는 남자, HIV/AIDS환자이지만 콘돔을 꼬박꼬박 챙겨가는 사람. 묘 하다.

진료소를 마치려는데 한 아주머니와 아이가 들어왔다. 아이의 코 속에 돌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는 3살 가량. 아이에 코에 무언가 기구를 집어넣기에는 코가 너무 작고, 그러기엔 진료소엔 석션이 없다. 갑자기 하우스에서 보았던 콧속에 철로 된 인형들을 집어 넣었고 그것을 강력 순간자석으로 뽑아내었던 관경들이 보았는데, 난 하우스가 아니고, 철로된 인형이 아니라 돌이었고, 난 순간자력발생기도, 석션도 없다. 순간 내 자신이 무력해졌다.

언제까지 이러한 일들이 계속되어야 할까? 설사환자에게 ORS를 계속해서 줄 수는 있겠지만, 결론적으로는 상수도 시설이 들어와야 하는것이 아닐까? 겨울에는 감기환자들이 많지만, 제대로된 주거 환경과 난방시설이 필요한것이 아닐까? HIV/AIDS 환자들에게 ARVs를 주고, 비타민과 면역 증강제를 줄 수 있지만, 질병에 대해서 교육하고 예방하는것이 옳지 않을까? 지금 난 어느 위치에 있는 것일까?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보다는 반대로 이들이 도움을 받는것에 익숙해지고 이것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것은 아닐까? 독립하지 못하도록?

고개를 들었다. 비가 그치고 급격하게 밖이 어두워 졌다. 그리고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Kaphunga, Swaziland, Africa
15/09/2011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