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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phunga 진료소 일기

Kaphunga 진료소 일기 (20)



벌써 20번째 일기라니- 시간도 빠르고 참 많이 주절 거렸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들어서는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불순한 생각에 일기를 쓴다. 자연스러운 정리하는 내용의 일기가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어딘가 만들어진 일기가 아닌가 싶다. 그래도- 좋다. 내 경험과 생각을 어딘가에 저장시켜 놓을 수 있다는 것이. 해는 졌지만 아직 날이 어두워 지지는 않았다. 숙소에 올라왔고, 미지근한 맥주한병을 열었다. 미지근한 맥주, 한국이나 독일에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인데, 그래도 좋다. 아직 바람이 차니까 미지근한 맥주가 좋다.

오늘의 첫환자는 며칠전 축구를 하다가 넘어진 환자였다. 손목 아랫부분이 심하게 부어있었고 손의 내회전 외회전이 안되는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노뼈(Radius)가 뿌러지지 않았나 싶다. 진료소에 엑스레이라도 한대 있으면 참 좋을텐데, 하지만 사치겠지? 종이박스 모아둔곳에서 딱딱한 종이를 찾고 붕대로 감아 주었다. 하루 빨리 시내로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라고 그리고 단단한캐스트를 하고 오라고 했다. 무언가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요 며칠사이에 첫 환자는 대부분 외상환자 들이다. 점점 외상환자가 늘어가는 기분이다. 이거 참..

좀 있다가 어린아이가 어머니와 같이왔다. 하루종일 어린아이가 잠을 잔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확인을 했다. 밤에도 자는것이 확실하냐고, 밤에 깨어 있는것이 아니냐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하루종일 정말 졸려하고 잠을 잔다는 것이었다. 기면증(Narcolepsy)이 아닌가 싶었다. 근데 우리 센터에는 암페타민이 없다. (있으면 큰일나려나?) 이 환자 또한 시내의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아침에 오는 연타석 환자들이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환자들이었다. 무언가 처지는 하루다. 게다가 정형외과에서 신경과/신경정신과 라니.... all round 라는 기분이 들지만 정작 치료를 해준것이 없기에 mono-narrow round인가 그런 생각이 지금에서야 든다.

온지 얼마 안되었을때 태어난지 2주정도 된 아이가 찾아온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찍었었다. 그리고 이곳에 온지 5주차인 지금. 그 아이가 다시 왔다. 이제는 7주차이다. 그 때에 이어 사진을 또 찍었다. 아프지 않고 진료소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주기적으로 찾아줘서 이곳을 떠나기 전가지 사진을 찍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욕심이려나?

카풍아는 아프리카의 작은나라 스와지랜드에서도 도심이 아닌 변두리지역이다. 그래서 버스는 하루에 6대정도 (상행3대 하행3대) 있다. 모든 집에전기가 공급되는 것도 아니고, 상수도 시설을 가지고 있는곳은 우리센터와 교도소 뿐이다. 나머지는 빗물을 쓰던지 또는 아무런 물도 없다. 하수도는 무엇인지 모르는듯한 기분이다. 당연히 사람들은 씻기가 힘들고 빨래도 힘들고 그렇다. 물론 옷이 없어서 빨래하기 힘든 이유도 있다만. 그러다 보니 종종 환자들을 받다보면 그리 유쾌하지 않은 향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이 오기도 한다. 고유 흑인의 냄새와 먼지냄새 등이 동시에.. 그러다가 그러다가 종종 회음부 부위에 상처가 있다든지 병변이 있어 그 부분을 봐야 할경우, 별도의 방에서 탈의를 하는데, 그럴때는 참. 정말. 거짓말안하고. 자랑으로 삼고 있는 남들보다 조금은 뛰어난 듯한 후각을 미워하게 된다. 오늘처럼..

얼마전 일기에서 나왔던 센조에게 며칠전부터 전화가 왔다. 이곳에 오고싶은데돈이 없다고, 그래서 지난 금요일에 15란드를. 화요일에 10란드를 다시 보내줬는데, 이놈의 자슥! 오늘 방문진료를 가보니 안 와있다. 돈 먹고 도망간건가? (물론 개학할때되면 어찌하든지 오겠지만)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무조건 도와주자 라는 식이지만, 정작 현지에 와보면 무조건 도와주는것이, 무조건 주는것이 만사는 아니다. 라는 말을 듣는다.현지에서는 그것이 철칙이다. 무조건 도와주는것이 아니라 그사람들이 혼자의 힘으로 일어 설 수 있도록 배경과 능력을 만들어주는것 그것을 원칙으로 하고있다. 순간 센조에게 25란드를 보내주었던 내 자신이 한심해졌다. 도와준다라는 마음이었지만 난 또 하나의 사람을 누군가에게 의지하도록 만든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센조이자식. 돌아오면 혼내줘야지-

진료소 일기 8에 등장했던 편도선염으로 추정되는 환자. 시내의 병원에 가봤더니 두경부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시내의 의사의 말로는 이미 전이가 심해 이하선(귀밑샘)과 머리에 전이를 했다고 한다. 심각한 두통과 호흡곤란 연하곤란을 호소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두경부의 림프절을 만져보려고 했다. HIV환자라는 말에 장갑을 끼고 했는데, 라텍스장갑이 딱 맞는것이 아니다보니 림프절이 손에 만져질 리가 있나... 입안을 다시 보니 많이 커져있다. 암이라면 만약에 암이라면은 양성이기를 바란다. 이정도 속도로 급속하게 자라는것은 아마도 양성일 테니까.

정작 일기를 쓰다보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보인다. 결국 전원,전원,전원 후 암 판정. 이런-

일기를 쓸때만해도 어둡지 않았던 하늘이, 이미 어두어졌다. 별들도 보이고있다. 필립퍼커스의 사진학강의노트 라는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해가질무렵 강의를 시작했고, 강의가 끝났을때는 이미 해가 졌었다. 강의실 안으로 들어오는 불빛이 변함에 따라 사람들의 목소리가 변해갔다는 이야기. 일기를 쓰면서 불빛이 변했고 일기의 어조도 변한듯하다. 그래도 좋다.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되는,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어디서 잘지 걱정을 안해도 되는, 특별한 환경에서 주어진 특별한 시간들.
참으로 복된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젠장. lacrimal glands가 활동을 한다. 그만 일기써야지

Kaphunga, Swaziland, Africa
07/09/2011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