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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이야기

울지마 톤즈, 울지마 아프리카

울지마 톤즈  

본의가 아니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프리카에 있다왔고, 그 시절의 아프리카는 항상 잊지 못했다.
졸업후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겠다고 노래를 하고있는 찰라에,
트위터 니나님께서 울지마 톤즈의 영화에 대한 알티와 소개를 시켜줬다 #니나_다시한번감사_
그리고 마음을 잡고 영화를 보러갔다




울지마 톤즈 (2010)

Don't cry for me sudan 
9.6
감독
구수환
출연
이태석, 이금희
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90 분 | 201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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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톤즈? 수단? 아프리카?

사실 사람들에겐 아프리카라는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곳이고
그리고 아프리카에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단이라는 나라를 알기까지는 아마 한 29년 하고 3개월 17일 지난 금요일쯤인거 같다.

간략하게 아프리카라는 대륙에 대해서, 수단이라는 나라에대해서,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톤즈라는곳에대해서 설명해보려고 한다.
ㄱ. 아프리카
  - 누구나 아는대로 지구반대편에 존재한다.
 -  총 61개의 나라로 구성되어있다.
 -  대서양과 인도양에 둘러쌓여있고, 2010년 월드컵을 개최한 남아공이 유명하다. (제일 남쪽에 있다 )
 -  북부지역은 모슬렘들이 많고 남부지역으로 내려갈수록 복음주의 기독교가 많다.
 -  로마카톨릭을 따라가지 않는 아프리카 토속 카톨릭도 있다.
 -  농담삼아서 친구랑. 영어,아랍어,프랑스어,포르투갈어 를 할줄 안다면 아프리카에서 살아남는다고 했다.
 -  아프리카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나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단, 나이지리아 이 세곳 이다
 -  아직도 많은 나라가 내전과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내전은 대부분 부족간갈등,종교간갈등.언어적 갈등이다.
 -  아프리카의 나라들은 문화권별로 구역되어진게 아니라 구 서구열강들에 의하여 구획되어졌고 그래서 갈등이 많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더했다가는 아프리카 블로깅으로 바뀌니까 여기까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참큰대륙이고 아직도 전쟁과 가난 기아 기근이 난무한다.

ㄴ.수단
-  수단은 이집트 아래에 있다. 청나일이 아직 맑을때 지나가는 곳이다.
-  아프리카에서 제일 큰 땅면적을 가지고 있으며, 관계시설을 통해 발전할 경우 재배 식량으로 아프리카 대륙이 먹고살 수 있다.
-  북부수단은 아랍계모슬림들이, 남부수단은 토착아프리카계 기독교인이 주류이다.
-  그로인해 내전이 생겼다 2005년에 겨우 내전이 종결되었다. (본인은 2005년 3월에 수단으로 투입;;;)
-  수단은 석유가 나온다. 하지만 그 개발권은 꽤나 많이 중국이 가지고 있다. 그래서 부자 나라인거고 영향력이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 카르툼에 진출하지 못한 남부수단은 가난에 허덕이고 BBC선정 가장 가난한 마을도 수단에 있다.
-  아래 지도에 연초록색 지역인 다프르 는 아직도 전쟁중이다. 세계에서 가장큰 난민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다프르에선 모든 기독교인을 죽여라, 모든 미국인을 죽여라라는 구호로 아랍계 군이 있다 (내친구 미국인선교사 ㅠㅠ)
-  초록색은 북부 모슬렘 아랍인이고, 빨간색이 남부 기독교 흑인이다.








ㄷ.톤즈
-  영화에 배경이 되었든 고 이태석 신분님이 계셨던 곳이다.
-  남부수단의 한 도시이고 엄청 가난하다.
-  사실 내가 있었던 주바는 남부수도의 주도였기때문에 공항도 있고 매우 큰 도시였다만. 톤즈는 그렇지 않다.
-  아래에 있는 부분이 톤즈이다.





2. 톤즈의 아버지, 고 이태석 신부님
이태석신부님은 2001년 신부서품을 받고 아프리카로 가셨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아프리카를 지망하셨다고,의사였고, 그리고 의사로 신부님으로 아프리카에 있었다.

단순한 정보나열이 아니라 줄글로 표현하자면. 한국에서 잘나갈수있었던 의사가. 전문의도 마치고 군의관도 마치고 나서 신이 좋기에 신부님이 되었고, 그리고 나서 아프리카로 가셨다. 그계기는 학생때 다녀온 여행때문이였다고 한다.

병원도 없고, 의사도 없고, 학교도 없는곳에서, 병원을 세우고, 학교를 세우고, 그리고 소년병들의 다시 일어섬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이런말을 남겼다 "예수가 이곳에 왔다면 학교를 지었을까, 성당을 지었을까, 대답은 학교였다고 한다"

아무것도 없는 아프리카,수단,톤즈에서 브라스밴드를 만들고,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삶,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나병환자와 함께있으며 그들을 거리낌없이 받아드렸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고 이태석 신부님의 10남매 중 3명이 주님의 종이되었다. 사실 그 어머니가 더 대단하신분이라고 생각이 든다)

나병환자와 있을때 아무것도 없어도 감사하고, 행복해하는 그들을 보면서 그 안에서 예수를 보았다고 한다.
그를 아프리카에 머물게한 구절은 이것이었다고 한다.
"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 마태복음 25장 40절

사실 위의 구절은 새빛재단 (안산1대학,인천기독병원)의 건립이념이기도 하고
또 내가 개인적으로 아프리카를 떠나지 못하게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의사로서도 수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데 굳이 신부가 되어야 하는지.
한국에도 가난 한 사람들이 많은데 굳이 아프리카에 가야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수많은 사람들이 신부님에게 질문했다고 한다. 두번쨰 질문은 나또한 가장 많이들었고 내가 내자신에게 하고있는 질문중 하나이다.
대답은 아프리카에는 그무엇인가가 있다 였다고 하는데 나또한 그렇다.한번 가서 본다면 다시 가게 된다.


3. 울지마 톤즈
신부님이 한국에 몇년만에 오셔셨을때, 건강검진을 받으셨다.
그리고 발견한것은 암. 하지만 전신 전이상태였다. 10일만 있다가 아프리카로 돌아가야하는데
신부님은 더이상 돌아갈수 없었다. 그리고 16번의 항암치료를 받는다.

톤즈에서는 쫄리 (영어이름은 John Lee라고 해서 쫄리라고 불린다고 한다) 신부님이 오시지 않는다고
다들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아파한다.

그리고 신부님의 마지막 모습과 장례식 을보고 추모를 한다.

딩카부족은 원래 울지 않는다. 내가 보았던 딩카도 울지 않았다.
하지만 딩카는 쫄리 신부님에 대한 그리움에 수많은 울음을. 아쉬움을 그리움을 나타냈다.

톤즈는 신부님이 안계신 1년 반여정도 멈춰있었다. 병원도, 학교도, 브라스 밴드도.
그렇게 한사람의 예수가 떠나고 나니 아프리카는 멈추었다.

그리고 톤즈는 울기 시작했다.

힌국의 수단어린이장학회와 인제대그리고  신부님이 속해 계시던 살레시오회에서 계속한다고 한다.
올해 11월 부터 내년 4월까지 의사가 비어있고 내년 4월부터는 부부가.
그리고 올해 11월까지도 의사선생님이 가 계신다.

참 다행이다.




3. 울지마 아프리카


과연 아프리카에 톤즈같은곳이 한군데만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져본다. 내가있었던 주바도. 충분히 상황은안좋았다
그곳은 지뢰밭이였으니까 (말그대로 정말 지뢰밭. UN산하 업체인 MECHEN에서 지뢰 제거 작업중이였다 )
그런곳에도 의사가 필요하고 또한명의 쫄리 신부님이 필요하다. 그렇담 여기서 질문이생긴다.
결국 아프리카를 도와주는것은 누군가 한사람의 슈퍼맨의 희생이 필효한것일까?
하지만 그 슈퍼맨도 결국 아프고, 다치고, 힘들고, 외롭고, 결국에는 하늘로 올라가게 된다.
좋다. 하지만 그 슈퍼맨이 떠나고 난뒤에 그곳은 다시 "울지마 톤즈"라는 곳이 되곤 한다.
(그분의 뜻을 폄하하려거나. 그 뜻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을 폄하하는것이 아니다)

결국 필요한것은 지속가능한 원조가 아닐까?
요즘 유행하는 선교학의 최신 트렌드중에서 ( 사실 난 개신교 선교단체 선교사였다;;)
지속가능한 그리고 자립가능한 현지 교회의 건립이라는 개념이 있다.
즉.
 1. 외부 선교사가 현지인에게 포교를 하고 개종하고자하는 사람을 받아드린다
 2. 현지 개종자를 중심으로 교육을 시키고, 외부선교사와 같이 일을 하도록 한다.
 3. 현지개종자가 자립을 할수있도록 외부선교사의 모처에서 교육을 시키고 그곳에 맞게 변형시킨다
 4. 현지인으로 이루어진 자립교회를 만들게 되고, 외부선교사는 떠나게 된다.

이것의 원칙은 외부인이 그곳에 항상- 퍼머넌트하게 상주하지 않더라고
현지인이 자립할수있게하는것 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것이다.

물론 의료라는것이 혜택을 받았다고 남에게 전할수있는 그런 패턴은 아니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의료라든지 보건의료에대한 전파가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자립하지 않을까?



4.울지마 다니엘


사실 내가 임상의를 포기하고 보건학을 하려는 이유는. 그런식으로 spot therapy위주의 의료행위가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1년간 아프리카에 있으면서 남아공,이집트,수단의 현실을 보았고.
몇명의 슈퍼맨/우먼이 세상을 바꾸기는 했지만 무언가 부족했다.

물론 그들에게 그순간와서 치료와 수술이필요한 응급환자와, 질환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매년 발생하는 말라리아에 대해서 모기에 대한, 그리고 치수에대한 계획없이 치료만 하는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
에이즈에대한 정보와 지식없이 무분별한 성행위를 하고있는 사람에게 치료약만 주는것은 오히려 방치이다.
설사에 걸려서, 수인성감염병에걸려서 오는 환자들만 보고, 고인물,썩은물을 마시게하는 치수를 방관하는것도 문제다.

이런식의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것이 필요할까? 둘다 필요할까? 그리고 내가 잘 할수있을까? 그런 두려움들이 엄습해 온다.

고 이태석 신부님과는 공통화제가 많다. 예수를믿는것,의사,아프리카.
하지만 난 그렇게 신부님처럼 모든것을 포기하고 아프리카로 갈 자신이 없다.
그래서 뒤로 물러난것이 아닌가라는 고민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는 아프리카를 사랑하고, 그들에게도 똑같은 건강과 행복이 있었으면한다
(물론 여기서의 건강은 내기준의 건강이아니라 그들이 생각하는 건강. 좀더 나간다면 절대적인 건강이다
  - 절대적인 건강이 존재한다면 말이다 )


이런 수 많은 고민들과, 그리고 아프리카의 현실을 되새기면서
나또한 울면서 이렇게 밤을 지샌다.







- Daniel Hojoon Lee 2010.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