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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보건지소이야기

3주차 2일.

별반 다를일이 없는 하루다.



오전에 오시는 어르신. 어떤 할머니 한분이 들어오신다. 잠시 관사에서 물통을 가지고 내려오는찰라. 진료실 책상에 앉기도 직전에 어르신이 말을 시작하신다 


 "아따, 이번에 오신 슨상님은 복스럽게 생기셨구랴" 


전에 계셨던 선생님은 조금 마르고 키가 크지 않다고 하는데,  아. 복스럽다는 표현이라니. 그래 내 배와 얼굴이 좀 복스럽기는 하지, 그리고 말을 이으신다. 


"복스러운 슨상님이 신전에 계시니까, 신전면에 올한해 복이 넘치겠네 "


말뿐만이라도 고마운 분이다. 다행히 어르신의 증상은 고혈압의 반복처방. 다른 고혈압의 이상증상이 있는지 가벼운 문진을 하고 약을  처방했다. 


점심쯤이었다. 한 어르신이 접수처에서 고구마를 드시고 계신다. 큰 고구마가 아니라 손가락 굵기만한 고구마, 박여사님이랑 황여사님이랑 어르신이 드시고 계신다. 그리고 나도 합류. 까는데 더 많은 시간이 드는 고구마를 서로 먹고 있었다. 근데 이 어르신은 한 문제가 있다. 그 문제가 뭐냐 함은 고혈압약을 드시고 계시지 않은것. 이미 고혈압이 높으시고 몇년전만하더라도 약을 드셨던 분인데, 약을 끊으셨다. 고혈압 약은 한번먹으면 평생 먹어야 하니 안먹겠다 라고 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고혈압 약을 먹으면 혈관의 탄력이 떨어진다느니, 혈압약을 먹으면 몸의 장기들이 망가진다느니 이런 말을 하고 계신다. 


도대체 누구일까 저런 이야기를 퍼트리는 사람이. 


30분정도의 시간이 설득에 사용 되었다. 


"어르신, 시장하시면 식사하시듯이, 혈압이 높으시면 고혈압 약을 드셔야 해요" 


"혈압약을 먹었을때 장기가 망가지는게 아니라, 혈압약을 안드시면 장기가 망가지는거에요" 


몇번을 반복했을까, 잠시 밥을 먹으러 올라갔다. 


한시간 반쯤 지났을까, 떠나신 줄 알았던 그 어르신이 다시 오셨다. 


"아따.  슨상님, 제가 다른데는 아픈데 없는데, 혈압만 높아요" 


다행이다. 혈압약을 드시기로 한 모양이다. 

환자분의 EMR을 열었다, 최근기록은 2010년 부근. 고혈압약의 거부에 따른 의사의 권고 사항들이 적혀있다


"고혈압약을 권유하고, 약을 먹지 않을경우 Stroke, 등 기타 합병증이 생길 수 있음을 권고 하였음 - 하지만 환자 거부함 "


어지간히 약을 드시지 않은 할아버지다. 사실 걱정이 된다. 그동안 약을 드시지 않았던 분이 갑자기 약을 시작하는것이 어떨찌.

우선 기본제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15일 뒤에 다시 검정. 내가 놓치는 부분이 없겠지 생각이 들었다. 


어느정도 약을 먹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사라진 상황에서는 보건소나 의료원에서 고혈압에 따른 합병증 기본 검진을 받아보시는게 좋겠다.

지소에서 하고 싶어도, 기구가 없다. 


그렇게 오후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장님 한분이 오셨다. 오늘 마을 잔치가 있는날이라며 방문진료를 부탁하러. 


그렇게 방문진료를 떠났다. 


마을 잔치가 있으니까 어르신이 많이 계시니까, 혈압이랑 혈당을 재자! 가 이번 출장 검진의 모토이자.

보건소에서 추진하는 말도 안돼는 출장의 이유라고 한다. 


그리고 마을 회관에 도착.


그래 잔치니까. 

잔치니까.

잔치니까.


잔치니까. 다들 술한잔 하셨네.

잔치니까. 다들 코피한잔 하셨네

잔치니까. 다들 고기한점 점심으로 드셨네. 


아뿔싸. 


멘붕이라는게 이런걸까. 

할미들은 이미 방한쪽에서 거하게 술한판을 하고 계시고

아재들은 거실에서 술한판 하고 계신다. 


우선 할미방으로 입장.  아침에 들었던 말을 또 들었다.

"아따 이번 슨상님은 덩치 허벌나게 좋아부라" 

- 네 제가 요즘 신전에서 뜨고있는 보건지소장입니다 


아무래도 시골에선 잘 먹어야 하나보다. 


난 어렸을때 할머니 손에 컸다.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색하지 않다. 

그나마 술을 안드신 분들 혈압을 재고 있는데 먹고 하라며, 음식을 주신다. 

돼지고기 수육, 작년에 담궈놓은 묵은지 김치, 수박, 떡 

다 못먹을 까봐 떡은 싸달라고 부탁하니 엄청 다들 박수를 치시며 웃으신다.

(혼자사는 시골 공보의에게 떡은 한끼의 소중한 저녁이 되었다) 


그리고 미나리+낙지 무침이 나왔다. 도시에만 살았던 나에게는 새로운 음식이다. 


검진을 왔다가. 음주 때문에, 검진은 날라가고 음식만 얻어먹고 왔다. 

이장님이 술한잔 권하시는것을 진료핑게를 대고 피했다.

사실 소주가 아니라 막걸리였으면 먹었겠는데...ㅋㅋ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 간듯하다. 

시골공보의의 하루. 카풍아와 다를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