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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phunga 진료소 일기

Kaphunga 진료소 일기 (62)



엄청 더운하루다. 어제 밤부터 시작된 여름. 밤에 자려고 눕는 순간부터 집은 더웠다. 양철 지붕의 위력. 달궈진 집의 내부- 찜질방이 따로 없다. 그렇게 더위에 깼다. 아침 7시 50분 집을 나섰다. 근데 이미 해는 중천이고. 뜨거운 열로 나를 태우고 있다. 덥다 라고 느꼈다. 그리고 내가 있는 곳이 아프리카였다는것을 새삼 다시 기억했다. 어제밤에 불려놓은 흰옷들을 세탁기에서 돌리고 덥지만 개운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하지만 오전 내내 지쳐서 늘어져 있었달까; 쳇;

몇개월동안 지속적으로 설사가 생겼다 사라졌다 한다는 환자가 왔다. 보통 급성설사는 있어도 이렇게 장기간 만성설사를 가지는 경우는 처음인 듯했다. 그리고 종종 피가 섞인 변을 본다고 했다. 점점 곤란해졌다. 무엇일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환자의 지난 기록들을 봤다. 작년 쯤에 대상포진으로 온적이있었다. 아! 머리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환자에게 물어봤다. 혹시 최근에 HIV검사를 받아봤냐고. 환자는 말한다. 몇달전에 받으러 갔었는데 기회가 안되서 다시 지난달에 다녀왔고 그래서 어느병원에 가서 어쩌구 저쩌고- 쭈욱 길게 말한다. 다시 물었다 그래서 결과는요, 환자는 다시 말했다. 'positive'

확실히 HIV와 만성 설사가 연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근데 진료소에 세달정도 있으면서 정체모를 증상들의 복합체로 나타난 환자들의 경우 HIV를 물어본경우 열이면 열 다 HIV+ 였다. 한국에선 HIV에서 짧게 배웠을뿐 그렇게 자세하게 배우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본다면 우리몸의 면역세포들의 저하가 나타난다면 어떠한 증상들이 나타날수 있을지 짐작해볼 수 있다.

순간 일기를 쓰면서 HIV에 대해서 너무 쉽게 생각하는 내 자신을 보았다. 한국에서 HIV양성이라고 하면 엄청 큰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성인 4명중 1명이 양성인 이 나라에서는 그렇게 큰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무뎌진것일까?

오후진료를 떠났다. 몇주전부터 계속 지속관리하는 환자가 있다. 안드레아스. HIV와 결핵에 고통받았던 환자. 귀가 들리지 않고 양 다리는 항상 부어있고, 복수가 차있는 환자. 지속적인 관리라고 해봤자 특별한것은 아니다. 영양관리. 소속되어있는 기관이 KOICA의 지원을 받아서 3개월짜리 영양지원 사업 기금을 따냈다. 10명정도 되는 HIV환자를 정한다음 지속적으로 식료품 보조를 해주는것이다. 사실 에이즈 환자들 대부분 항 바이러스 제제를 먹고 있기는 하지만 충분한 영양섭취를 하지 못한다. 단백질의 섭취량은 정말 끔직하게 낮은 정도 (음.. 나도..), 안드레아스에게 냉동통닭과 밀리밀(현지음식재료,옥수수를 말린 가루)을 주었다. 안드레아스가 고맙다며 'Thank you'를 연신 말한다. 그러더니 갑자기 두손을 자신에게 가르치면서 'why do you give me there?' 라고 말한다. 그렇니까. 왜 나같은 사람에게 이것을 주냐는 뉘양스였다.

갑자기 요즘 읽고있던 책의 문구가 생각났다. 소설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에 나오는 조시마장로의 형이야기. 자신이 죽기 얼마전에 왜 나같은 사람을 위해 이러한 대접을 해주냐며, 자신은 이러한 대우를 받을 존재가 아니라고 했던말. 그 내용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안드레아스의 입에서 나왔고, 그리고 나의 입에서 나왔다. 내가 과연 안드레아스에게 그러한 말을 들은 자격이 있는것일까? 안드레아스가 고맙다고 할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 것일까? 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내가 얼마나 큰일 을 했기에, 이곳 사람들에게 고맙다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것일까? 내 자신이 그러한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오늘의 방문진료는 끝났다. 33도씨의 더운 여름. 게다가 바보처럼 겨울 바지와 두툼한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더욱 더웠다. 하지만 어제 저녁부터 미리 만들어 놓은 냉면육수로 맛난 냉면을 먹었다. 그리고 아직 해가 지지않은 길을 걸어 집으로 들어왔다. 방을 들어와 보니, 작은 선물이 있었다.

그래 방 한쪽병면에 검정색으로 긴 줄이 1m정도 가 있는 것이다. 무엇인가 했다. 혹시 벽에 금이 나거나, 나무의 진물이 흘러내려온게 아닌가 했다. 아. 개미였다. 대략 개미 1000마리 정도가 군집을 이루고 있던 것이다. 이게 그 유명한 스와지의 검정개미인가보다. 그래 이제 동거인이 늘었다. 나방. 모기. 파리. 이구아나에 이어 이제 개미라니. 외롭지 않다. 근데 1000마리는 너무 많다. 주인집 아저씨에게 살충제를 빌려, 물에 개어서 벽에 바른다.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미안하다. 이들의 원래 삶의 터전에 내가 들어와 내가 그들을 내 쫓는것이 아닌지. (근데 생각해보면, 도시와 된 곳이라면 그렇겠지만, 스와지 그것도 카풍아 같은 준-오지급의 마을이라면, 원래부터 이렇게 같이 살지 않았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수백마리의 개미를 죽이고 일기를 쓴다. 근데 꿈에 나타날까 두렵다. 사실 꿈에 나타나도 좋으니 잠잘때 침대로 안 올라오거나, 천장에서 침대로 안 떨어졌으면 좋겠다.

오늘은 맥주대신 얼음장처럼 차가운, 하지만 집에오면서 다 식어버린 코크 라이트 이다.

Kaphunga, Swaziland, Africa
9/11/2011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